

코로나로 인해서 디지털로의 전환이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이미 젊은 세대들 사이에선 디지털과 인터넷이 디폴트였지만 많은 기성세대, 특히 중간에 끼인 3040들이 디지털로 전환하도록 푸시한 요인이기도 하다. 이제 막 디지털이 norm이 된 세대들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고 진부하지 않지만, 이미 디지털 전환을 맞고 정점을 찍었던 젊은 세대들에게는, 특히나 지금처럼 기성 세대가 자기들의 영역에 침투하고 오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디지털 영역은 그들에게 진부한 것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싶다.
동시에 이미 디지털 시대에서 느끼는 부작용을 충분히 겪은 시점에서 그들은 아날로그로의 신선함에 매료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 속의 불편함이 새롭고 ‘굳이’ 찾아서 해 봐야 하는 재미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기성 세대, 그리고 나와의 차별점이 생긴다. 그들에게 새롭게 느껴지는 아날로그가 나에게도 ‘낭만’일 수는 있어도 새롭지는 않다. 오히려 이것들은 우리에겐 추억이다. Y2K 디지털 제품, 디카, 필카, 플립폰, mp3 플레이어 등을 통해 그들은 소유하지 못했던 추억을 자기들만의 추억으로 재생산하고, 우리는 옛 추억을 끄집어내어 과거를 향유한다.
디지털 기기 쪽에서는 그런 흐름을 볼 수 있다면, 지금 내 일상 생활에서는 어떤 아날로그 감성이 침투하고 있나 생각해 보면 아마 덕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 같은 시대에 아무도 듣지 않는 CD를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음반 판매량 높여 준다고 수 개를 사고, 그 안에 들어있는 포토카드를 비롯해 다양한 굿즈, 프린트물을 소유하는 것에 의미를 두니 말이다. 디지털 세상이라면 이제는 종이로 만들어진 그런 카드나 엽서 따위는 의미 없고, 고용량 고화질 잘 찍힌 사진을 JPG로 주는 것이 더 타당할 텐데, 팬들은 잘 찍힌 사진보다 흔치않은 아이돌의 모습이 담긴 이미지를 열광하고 물리적인 굿즈에 담긴 희소성에 더 의미를 둔다. 희미하더라도 인위적이지 않은 모습이 담긴 무언가, 또는 아티스트이 손글씨나 흔적을 간직하려고 한다. 이런 아날로그 감성은 어디까지 회귀하냐면, 일전에 언급했던 부적까지 회귀하는 듯하다. 정보화 시대를 넘어 이제는 디지털로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수집할 수 있는 시대임에도 사람들은 부적과 같은 것에 의미를 두고 나아가 미신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기까지 한다.
반면에 물리적인 것에 대한 낭만과 아날로그적인 매력을 찾느라 NFT는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의미로는 이해가 되는 것이 NFT는 고유한 정보의 보존에 초점이 있는데, 팬들은 그런 고유함, 나만 간직한다는 것보단 공유하고, 일정의 희송성에 따라 나눔과 소유의 적절한 섞임에서 덕질을 하고 공동체의 즐거움을 느끼는 듯하다. NFT 는 그런 나눔이 불가능하니… 굿즈, 특히 포카가 일부 아이돌은 장당 20만원까지 거래된다고 할 지라도 굿즈는 재판매와 투자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NFT가 활용되기에 적절한 대상이 아니다.
공유와 간직, 보관 등의 속성에 다시 돌아가 보자면 물리적인 것을 나의 정성을 들여 보관하고 간직하고, 그것을 꾸미기 위해 시간과 공을 들이는 행위가 ‘굳이’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굳이의 노력을 사람들과 나누면서 그 즐거움은 증폭된다.
나는 할미라서, 이런 걸 왜 굳이 하나, 라고 생각했고, ㅇㅅ도 굳이 앨범을 여러장 사야 하나 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여전히 일부 동의하긴 한다. 새 상품이 나올 때마다 이걸 사야 하나, 라고 생각했는데, 어차피 안 쓰고 난 박스에 쳐박아 둘 건데… 라고 생각했는데 빈이가 사라진 시점부터 그 의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 구하지 않으면 구할 수 없는 것이 되었고, 더 있을 리 없는 빈이이기 때문에 과거의 흔적이라도 모아야만 했다. 이런 이유로라도 모으기 시작하고 꾸미기 시작한 포카의 매력을 알아 버렸고, 할미들과 함께 사진과 굿즈를 감상하면서 감탄하고 좋아하는 것이 어떤 카타르시스를 불러 일으키는지 꺠달았다. 이 아무 의미없는 종이쪼가리가 우리에게 이렇게 웃음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에 새삼 놀랍다.
그뿐이 아니다. 문네모, 모짜빈, 치즈딴이 등 아이돌을 닮은 인형을 구하고 들고 다니고, 그때 아이들이 입었던 옷과 비슷한 의상 소품을 사서 입히면서 함께하는 만족감을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물리적 부재를 인형들이 대신해 주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어릴 때 인형놀이에 심취해 있듯 미친듯이 인형 옷을 사 입히면서 꽤나 즐거워하고 있다. 아무리 닮았어도 내가 좋아하는 빈이가 아니고 산하가 아닌데도 좋다. 내가 좋아하던 모습의 빈이처럼 옷을 입히고, 그 때 그 순간을 추억한다. 인증샷을 찍는 행위로서 나의 함께하고픈 나의 마음을 표출한다.
이런 물리적 굿즈가 시간이 지나고도 우리에게 그때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그떄의 추억에 잠기게 하니 ‘굳이’ 찾아서 모으고 소유하는 것의 의미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위의 트렌드가 말하는 즉석이 아닌 시간을 들기ㅗ 애를 쓰는 면에서 아이돌 굿즈는 팬들에게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팬들은 그런 요구에 기꺼이 응한다. 이런 애씀이 나중에는 추억으로 남는 거니까.
그만 산다, 안 산다, 쓸데 없다면서도 산다. 나에게 의미없음이란 아마도 언박싱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소유하고 싶고, 조금이라도 내가 더 빈이와 아스트로의 추억을 소유하는 것을 넘어 공유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러기 위해 사 모으고 간직한다. 몸으로 가서 뛰고, 종이 쪼가리를 꾸미고, 산하가 쓰던 디카를 찾아 꺼낸다. 그런 ‘굳이’의 노력이 내 덕질을 더 재미있고 풍성하게 만든다.
이게 과연 회기일까? 기기와 재료의 선택은 회기일 지는 몰라도 그렇지 않다. 새롭다. 새롭운 추억이 된다. 또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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