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를 뛰어넘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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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이 이치에 맞기를 간절히 바란다.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과학이론, 역사적 서사, 점성술, 종교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우리는 ‘왜’ 그런지 알고 싶어 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에 끌린다. 이야기는 의미를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설령 이야기를 잘못 파악한다 해도, ‘왜?’에 대해서는 답을 얻을 수 있다.

차이를 뛰어넘는 그리스도인

사랑하는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꽤나 “왜”에 집착했었다. 그가 그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한 맥락을 찾을 수 없었다. 유가족은 알았을 수도 있고, 그가 다니던 병원 의사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는 나에게 공유되지 않는다. 내가 알아야 할 권리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 나름대로의 이유를 만들어 냈다. 그간 내가 알아온 친구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추측하여 그의 선택까지 도달하게 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게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내가 그에게 안녕을 고하기 위해서는 그런 맥락이라도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이야기, 내가 내린 결론을 다른 사람과 나누지는 않았다. 그저 나 혼자 일기장에, ‘넌 그랬겠지? 아마 그래서 힘들었겠지? 그때 네 마음은 어땠니? 지금은 어떻니? 내가 보고 싶지는 않니?”라고 적고 보냈다. 이제는 희미해져 버린 친구의 떠남에, 그 충격적이었던 사고에 나의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라도 그 과정은 필요했다. 

내 나름–비록 진짜는 아니더라도–‘왜’에 대한 답을 도출해 낸 후에는 그의 죽음도, 그의 선택의 사고방식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그럴 수 있어. 넌 많이 힘들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난 널 천국에서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기뻐.’라고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만든 이야기에는 라크레가 말하는 악당도, 영웅도 없다. 그러나 그가 바라보는 진짜 악당인 죄가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등장할 영웅(예수님)이 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예수님이 오셔야 마무리지어질 수 있다. 

난 오늘도 그 날을 기다리며, 그 소망으로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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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Me

전 편집자, 현 오디오북 제작자이자 영업사원, 똘이순이의 언니, 잡기에 능한 사람, 아스트로 덕후, 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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