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싱가포르로 휴가를 가자니 동생이 매번 호스트 역할이 되는 것도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동생이 한국에 오면 쉬는 게 아니라 효도하러 오는 셈이 되어서 쉬지도 못한다. 결국 딱히 여행이고 관광이고는 모르겠고, 2월 미국행 표 끊고 남은 마일리지 (나는 부모님 마일리지) 박박 긁어서 중간 지점에서 만나서 놀자고 했다.
말이 ‘놀자’이지 실은 ‘쉬자+먹자’이다. 관광하는 것 안 좋아하고, 맛집 찾아 다니는 거 안 좋아하고, 쇼핑 별로 안 땡긴다. 우리 가족은 여행 중 풍경을 “눈으로만”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에 딱히 뭘 하고 싶다는 건 없었다. 그래서 비행기 표와 호텔만 예약해 놓고 남은 석 달을 ‘관광지 어디 갈까?’만 서로 묻다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고 만났다.
그나마 대만 관광청에서 여행 지원금 럭키 드로 한다고 해서 그건 신청해 놨지만, 그마저도 나는 떨어지고 동생은 귀찮다고 추첨하러 가지도 않았다. 심지어 난 환전도 동생이 전날 얘기해서 아차, 하다가 공항에서 20만 원 정도 대강 환전해 갔다. 10만 원만 더 했으면 진짜 원없이 먹고 다니는 거였는데… (빠득)
결론적으로 대만 여행 중 가장 재미있던 건 반년만에 만난 동생과의 수다였고, 특히 우리 자매의 이상한 웃음 코드가 발동했던 고궁 박물관 투어가 제일 재미있었다. 그 다음 웃겼던 건 똘이 화장할 때의 에피소드였다. 글로 쓰기만 했을 땐 그냥 피식거리고 말았는데 웃을 준비하고 듣는 동생 앞에서 말로 하려니까 너무 웃겨서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다.
그 와중에 자매라서 그런지 수아 생각하면서 울고 왜 요즘 아이들은 실수를 용납할 여지 없이 빡빡하게 사느냐며 속상해 하기도 하며 조기 유학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부모와 떨어져 무식하게 자라다시피 했던 학창시절을 생각하며 그런 것 치고 우리는 참 잘 자랐다고 자평하고 하이파이브를 했다. 아주 큰 굴곡은 없었지만 주변에 앞길을 비춰 줄 어른도 없이 살았는데, 참 주님의 은혜로 잘 살았다고 느꼈다.
꽤나 즉흥적이고 계획 없는 4박 5일 일정은 실행력 좋은 동생 덕분에 아주 늘어지지도 않았다.
둘째 날엔 생각 외로 날이 쌀쌀했는데 싱가포르에서 여름 옷만 챙겨 온 동생이 입을 만한 옷이 있을까 해서 몰을 잠깐 둘러 보고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점심을 먹은 후 뭐라도 할까 해서 고긍 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메트로 가는 길도 동생이 다 알아보고, 귀찮아서 내 현금마저 동생에게 다 주고 알아서 내라고 했다. 오랜만에 해외여행에 왜 이리 구글 지도가 어색한지…
사람 많은 고궁 다녀왔다고 둘 다 지쳐서 저녁은 숙소 근처 아무데서나 먹자고 골목을 걷다가 보이는 로바다야끼 집을 갔다. 구미 당기는 꼬치와 채소구이를 먹다가 주문 누락된 닭 간 꼬치로 마무리 하면서 존맛이었다고 박수를 치고 나왔다.
셋째 날엔 그래도 대만 관광은 한 번은 해야 하지 않겠냐며 전날 예약한 지우펀 1일 관광 버스를 탔다. 대만 현지 가이드가 영어로 설명하는데 말끝마다 ‘오케이~?’를 물어서 아주우 질렸다. 인원 체크한다고 대기하는 시간도 지겹고, 영어 듣는 것도 힘들었고, 바글바글한 사람들 뚫고 관광지 구경하는 것과 증명사진 찍듯 찍는 사진은 너무 힘들었다. 둘 다 다시는 관광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일정은 9시 넘어저 마쳤는데 너무 배고프다고 헤어지는 역 근처 일식 선술집에 들어가 또 꼬치와 맥주, 고등어를 흡입하듯 먹고 나왔다.
넷째 날엔 유명한 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우육탕면, 샤오롱바오, 채소볶음, 교자 튀김을 시켜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노래를 부르던 치실을 사면서 행복해 하고,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 맛있는 커피집에서 커피와 도넛을 사 먹고 사장님께 따봉을 날렸다. 저녁까지 낮잠을 자고 침대에서 밍기적 거리다 꿔바로우 먹고 싶다고 외치며 저녁을 먹으러 나가 한 두시간을 배회하고 결국 캐시 온리에 좌절해서 다시 둘째 날 갔던 로바다야끼를 가서 스끼야끼와 닭간 등을 시켜 먹고 꽤나 만족해서 돌아왔다.
마지막 날엔 둘 다 저녁 비행기라 여유있게 아침에 궈바오란 대만식 샌드위치(?)를 먹으러 갔다가 다시 까르푸를 들러 팀원 줄 선물을 사고 드디어 버블티를 마시고 발마사지를 받고도 시간이 남아 여유롭게 공항으로 갔다. 이 모든 스케줄은 다 동생이 주도했고 난 그저 쭐래쭐래 따라다녔다. 하지만 예상치 못핸던 건 망할 저가 항공에서 수속 시간이 너무 늘어져서 정작 먹자던 저녁은 먹지도 못하고 헤어졌다. 출국 경험이 너무나도 정신없었던 탓에 대만 여행은 즐거웠다기 보단 고단했다 라는 인상이 더 강했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은 동생과 논다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을 상쇄했다. 이해하지 못해도 언니의 덕질에 호응해 주고, 나와 같은 thought process를 가진 누군가에게 내 덕질 얘기를 해 주면 배경지식이 없어도 아주 많이 공감해 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덕질이 아니더라도 사소한 것 하나를 보더라도 둘이서 키득거리며 웃을 수 있고 (예를 들면 풍등 소원) 음식 취향이 같아서 서로 비슷한 메뉴를 찾아다니는 것, 거리낌없이 서로의 옷을 나눠 입을 수 있는 것, 무엇보다 나보다 돈 잘 버는 외노자 동생이 있어서 여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함께 살기에는 동생은 너무 J에 OCD가 강하다. 나도 굉장히 (사회화 된) J인데 동생 옆에선 찍소리도 못한다. 둘이 붙어 있기엔 서로의 공간 분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동생도 내 옆에 있으면 꽤나 신경 끄들겨 한다. 그래도 자매는 코드가 맞는다. 부모님이 여동생 낳아줘서 무척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이번 여행 소감을 마친다. 사진을 곁들인 여행기는 천천히 올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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