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있다는 후기를 사방에서 들었고, 슬프다는 얘기도, 산하 연긴 잘한다는 얘기도 이미 시사회를 보고 온 사람들의 트윗 등을 보고 알고 있었다. 나도 아이돌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 그럼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산하를 보기 위해서 잡은 무대 인사 관람이었다. 이전에 했던 TV연기도 귀엽기 그지얺던 남동생 역이었으니 그 정도만큼은 하겠지라고 생각했었다.
한 시간 20분 정도로 짧은 영화에 디테일은 과감히 삭제하고 빠르게 이야기를 끌어나갔다. 핵심적이고 감정적인 부분도 꽤 빠르게 지나갔음에도, 그 순간에서의 감정은 절절하게 와닿았다.
[줄거리]
집안의 기대를 짊어지고 과거 준비를 위해 암충사로 간 삼수생(?) 김유는 유교 이치에 맞지 않게 부엌에서 음식을 하는 계암을 만나 요리의 재미를 알게 된다. 편견에서 벗어나 자신이 정말 즐거워 하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여전히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는데 집착한 형이 가문을 구렁텅이로 빠뜨린 정판서의 괴계에 다시 넘어가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 김효로는 병을 얻고 결국 돌아간다. 아버지가 돌아간 후에도 형은 유에게 급제를 강요하지만 부채에 숨겨진 아버지의 전언을 발견한 유는 군자의 의미를 깨닫고 자신의 길을 가기를 택한다.
자유로운 새처럼 하늘을 날며 세상을 두루 살피고 싶다던 우리 유, 늘 순수한 마음이 앞서는 니가 이 험한 세상 나 없이 어찌 살아갈까? 그것이 걱정되어 네 고통을 알면서도 급제를 강요하였다.
부디 미움과 원망일랑 다 잊고 참된 선비로 살거라.
어디서 뭘 하든 너는 내 자랑스러운 아들, 김유다.
수운잡방, 김효로
“어디서 뭘 하든 너는 내 자랑스러운 아들, 김유다.”
내심 엄해 보이지만 아들을 사랑하고 그의 심성까지 다 알고 있었던 사랑 가득한 아버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친지들 앞에서 질타받는 아들이 안쓰러워 화내는 척 방으로 돌려 보내고, 떠날 때 제대로 배웅해 주지 못한 것이 맘에 걸려 공부하는(?) 아들을 만나러 암충사로 직접 가기도 하고, 아들이 직접 요리를 한다는 것을 짐작했지만 큰 아들이 잘못했을 때처럼 화내지 않고 속으로 걱정만 하던 아버지의 진심은 불에 비춰야만 보이는 숨겨놓은 편지와도 같이 한번도 입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들의 음식에 흡족해하며 마음까지 따뜻해지고 열 번이라도 더 먹고 싶다고 진심으로 표현하던 아버지의 편지는 유가 암충사로 떠나기도 전에 적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아버지는 유가 자유롭게, 그러나 참된 선비로 살아가길 바랐다. 그렇게 되게 지켜줄 수 있는 아버지이길 바랐고, 자기가 없을 떄에도 아들이 단단하게 서 있길 바랐다. 그 진리는 유가 과거를 위해 공부하던 공자의 말에 있었고, 전달은 아버지를 통해, 깨달음은 계암과 요리를 하면서 얻어졌다.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상대주의가 만연한 시대에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라는 메시지가 있긴 해도 그 메시지는 “참되다”라는 전제, 즉 들 안에서의 ‘무엇이든’으로 한계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참된 군자, 참된 선비는 형이 생각했던 것처럼 급제와 출세, 명예 회복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이제는 클리셰같은 표현이 되어 쓰기 싫긴 하지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사회에 도움이 될 떄 얻어진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그런 인물이 되길 바랐다. 세상이 생각하는 양반의 길을 따르기엔 순수하고 호기심이 많은 아들을 몰래나마 숨통을 틔워주던 그런 아버지였다.
한평생 옳은 길, 올곧은 선비의 길만 따르던 형은 관복을 벗게 될 때의 억울함에 사로잡혀 아버지와 동생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게 된다. 씁쓸했던 건 그가 변명하던 “나라고 쉬웠는 줄 아느냐”라고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감정으로 정당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바른 것을 보지 못할 정도로 분노와 집착이 그를 휘감았다. 자기도 힘들었다는 것이 그런 잘못을 했음에도 자신은 여전히 바른 선비이며 이건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다는 변명을 만들어 냈다. 원래 갖고 있었던 사회적 명성과 지위가 곧 자신을 정체성(올곧음)을 대변한다고 생각했다. 형의 생각의 변화에 대한 서사가 빠진 것은 참으로 아쉽다. 지나치게 단순화 되어 미워할 수 없는 가족이라는 빌런의 역할로 전락한 것이 아깝다.
계암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은 많다. 참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그저 브로맨스를 나누는 요리 스승으로만 보여진 것 같아서 아쉽다. 그가 했던 음식에 대한 주옥같은 명언들이 어떤 생각에서 나왔는지 더 풀어낼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 그러나 거기까지 쓰기엔 좀 많이 먼 것 같아서…
공교롭게도 영화 개봉일 전날부터 팬들은 다른 이유로 시끄러웠다. 회사 차은우의 단독 팬클럽을 모집하면서 아스트로와 완전히 분리되는 것도, 그렇다고 모두 끌어안는 것도 아닌 행보에 화가 났고, 빈이의 추모공간이 선운사로 옮겨가면서 유품 전시를 하는 것이 회사와 선운사(동국대)와의 일종의 업무협약으로 악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매우 짙었다. 팬클럽 모집은 특히나 아로하 6기를 기다리던 팬들에게는 엄청난 배신감이었고, 유품 전시는 빈이가 조용하고 편안하게 영면하기 바라는 팬들의 바람에 엇나가는 처사였다. 죽어서도 누군가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처럼 보여지니 팬들은 불쾌하고, 심지어 전시를 관리하는 주체도 없다고 하니 있을 수 있는 절도와 같은 사고가 우려되었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걸 어떻게 진행할 수 있지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 하나는 그냥 말없이 멤버들이 하는 모든 것에 지지를 보내고 싶다. 지금 하나하나 해 나가는 것에 같이 기뻐하고 응원하고 싶다. 진우가 얘기한 우울하고 힘든 시간에 그저 말없이 함꼐해 주고, 작은 일 하나에 좋아하고 가서 웃어주고 싶다. 수운잡방의 아버지의 마음이 지금 내 마음 같아서 영화를 보는데 눈물이 났다.
“어디서 뭘 하든 너는 내 자랑스러운 아들, 김유다.”
아스트로 멤버 한 명한 명이 다 자랑스럽고, 이 메시지를 여섯 명 모두에게 전하고 싶다. 아버지가 ‘설마’ 하며 유의 요리하는 흔적을 상기하고 걱정하듯 여전히 그들의 선택과 결과에 걱정이 되기도 한다. 행여나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무언가를 시도하다가 좌절하고 상처 받으면 어떡하나, 이 과정을 못 견디면 어떡하나 싶기도 하지만, 말없이 아들에게 사랑을 보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사랑을 보내고 싶다. 이 마음은 (회사에게는 아니고) 혹시나 좋은 마음에 허락을 했을지도 모를 유가족에게까지도, 차은우에게까지 미친다. 영화를 보고 나선 정말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더더욱 든다. 아이들의 속마음을 모르고, 내부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데 말을 얹기가 무섭다. (물론 덕메들끼리 욕은 실컷 했다)
난 그들의 부모도 가족도 아니니, ‘어디서 뭘 하든 나의 자랑스러운 아이돌’이라고 무조건 지지해 줄 순 없다. 그러나 아버지가 ‘참된 선비’를 지향하는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인 것처럼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2016년에 모였던 여섯 명의 아이들은 어디서 무얼 하든 나의 자랑스러운 아이돌이다. 그렇게 꾸준히 바르고 참된 것을 찾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응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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