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번 쯤 보니까 소설과의 괴리감은 많이 적응했다. 뮤지컬의 특성과 각색의 의도를 조금씩 깨닫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난 여전히 이 뮤지컬이 민우를 통해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다. 관객은 그냥 민우를 향한 연민만 가득 안은 채 끝내면 되는 건가? 삶이 고단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민우의 마지막 대사와 노래가 너무 불안했다.
"이제 다 끝났어"
행복해서 울고 싶은데 그날이 내겐 안 올 것 같아
내 심장이 얼어버린듯 더이상 움직여주지 않아
사랑했던 사람들 눈처럼 덮여진다
힘겨운 순간 그날 내려놓고 이제 난 어둠 속으로
극에서 풀어낸 민우의 삶은 그리 길지 않다. 대학생에서 사회로 나가는 그 기간, 소설에선 고작 2년이다. 아무리 늘려도 5년이지 않을까. 사람 치고 짧게 교도소 다녀오고, 사람 찌르고 좀 더 오래 다녀오고, 그 사이 그에겐 아이도 생기고 밑바닥 생활에 형님 소리 들으려면 말이다.

그 짦은 시간이 너무나도 고됬나보다. 그때 경험한 밑바닥 삶이 그렇게 싫었나보다. 사생아라고 해도 온실 속 화초처럼 고통 고뇌없이 살던 20대 청년에게는 버거웠나 보다.
민우가 말한 행복해서 울고 싶은 날이 언제일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격의 눈물 같은 걸까? 자신의 상황이 호전되어 예전처럼 행복해질 그 순간을 기다리는 걸까?
삶을 놓아버린다는 것이 저렇게 평안한 일일까? 다 끝났다고 안도할 만큼 버거운 게 난 뭔지 잘 모르겠다. 민우는 마치 스스로 그만두지 못해 억지로 살아간 것처럼 안도한다.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 해 본 적 없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도 민우같은 그런 생각을 한 걸까 라는 생각까지 이어지고 나면 이 뮤지컬이 매우 원망스럽다. 이 작품을 택한 명준도 진진이도 밉다.
처음 마주쳤던 그 모습
반짝이던 그대의 눈빛
그날의 설렘 그대의 웃음
나는 잊지 않을게요
밤새 너와 얘기를 하며
웃던 지난날이 너무 그리워
우린 왜 언제나 뒤늦게 알게 될까
삶이 숨겨둔 그 행복을
흘러간다 세상은
멈추지않고 변해간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모두 끝난다
지나간다 기쁨도
슬픔도 모두 끝이 난다
우린 매일 이별하며 살아간다
마음에 남아
난 꿈을 꾼 것만 같아
슬프고 아름다운 꿈
그대여서 난 고마웠어요
산다는 게 힘겨웠나
고독했던 너의 삶이
마음에 남아
흘러간다 세상은
멈추지않고 변해간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모두 끝난다
지나간다 기쁨도
슬픔도 모두 끝이 난다
우린 매일 이별하며 살아간다
마음에 남아
떠난 민우를 생각하며 다혜는 아름다웠던 그를, 현태는 즐거웠던 추억을, 은영은 슬픔 깃든 꿈을 간직한다. 로라와 허버트는 살아남아야 하는 삶을 살던 사람들이라 그런가 민우의 삶을 딱하게 여긴 듯하다.
모두가 기억하는 민우도 다르고, 그럼에도 삶은 흘러가고, 비단 민우와만 이별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여러 형태로 이별하며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그리워하고 그와의 기억을 간직하면서도 현태도, 다혜도, 은영도, 모두 그렇게 또 묵묵히 삶을 이어간다.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살아가자고. 흘러가듯 살아가자고. 그렇다면 동의한다. 다만, 민우는 삶이 숨겨 둔 행복을 너무 늦게 깨닫고 떠난 것 같다. “예쁘죠? 저에게도 가족이 생겼어요”라던 민우는 소설과는 다르게 아들을 통해서 행복을 조금이나마 찾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은영과 이 바닥을 뜰 계획을 짰던 것 같다. 다만 거기까지 가늘 길마저 버거웠을 뿐. 그래도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부디 모두가 그런 행복을 간직하고 떠나길.
버겁다고 말없이 가지 말아. 아무리 흘러가고 살아지더라도 잊혀지진 않아. 마음에 남는다고.
——
앞으로 5회 더 볼 겨울나그네는 나에게 애증의 뮤지컬이 될 것 같다. 명준이의 원래 잘하던 걸 처음 보게 되는 공연으로, 진진이의 끊임없는 시도와 성장을 목도하는 공연으로, 그리고 언제나 소설 그대로 갖다 쓰지 않는 공연으로. 회전의 마법이 통한 공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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