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MBTI로 정의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잊지 않기 위해 단순화해서 끄적여 보려 한다. 요즘 내가 하는 짓 생각하면 J도 아니라고 말할 우리 팀장과 ㅇㅅ가 생각나지만, 이번 출장 첫날부터 난 여기에 비하면 완전 J야!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 상사들과는 3년 동안 일하면서 처음 대면했다. 미국-미국 경유-인천 경유-마닐라로 가는 비행기를 끊은 덕분이었다. 그래선지 이미 만났을 때 반송장처럼 피곤해 보였는데 입은 쉬지 않고 말을 했다. 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수다를. 40대 중반의 두 남자가 엄청 수다스러운데, 영어로 듣고 있자니 이게 웬 시트콤 방청객이 된 느낌이었다. 입담이 왜 이리 좋은지 엄청 웃었네.
그러나 요지는 일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만나서 필리핀 가서 일정 계획을 짜고, 동선을 준비하고, 발표 리허설을 할 얘기를 할 줄 알았는데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내가 말하기엔 나도 발표하면 내 실력 뽀록 날까 쫄려 있어서 가만히 있었다. 솔직히 저 수다에 일 얘기 끼워넣을 타임이 없었다.
상사 2와 나는 필리핀 입국 심사장에 있었는데 E-travel인지 전자 입국 서류를 써야 한다는 걸 몰랐다. 내가 내야 할 서류 있냐고 했을 때 없다고 했던, 필리핀 여러 번 왔다는 상사 1만 혼자 유유자적 심사를 끝내고 수하물 찾으러 가고 있었다. -_- 아니 왜 말을 안 해 줘? 상사 2와 작성하면서 키득거렸다. 나만 안 했으면 식은땀 났을 텐데, 상사 2도 안 해서 다행이었다.
필리핀이 처음이라는 상사 2는 이동의 자유를 맛보고 싶다고 렌터카를 예약했단다. 상사 1은 “난 원래 그랩 타고 다닐 계획이었는데… 그래, 어드벤처 즐겨보지!” 이러고 말리지 않았다. 공항 직원에게 렌터카 회사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옆에 있던 현지인이 “Good luck driving!”이라고 비아냥댔다. 이때 포기하고 차를 빌리지 말았어야 했어.
도착해서 1시간 걸려 차를 빌렸다. 작은 차를 빌려서 짐이 트렁크에 다 안 들어갔다. 내비가 없어서 핸드폰 구글 맵에 의지해야 하는데 거치대를 안 들고 왔다고 무릎 위에 핸드폰 놓고 운전했다. 미국인들이라고 앞자리(shotgun)가 상석이라고 날 앉혔다. 앞자리에서 한국말로 “야야!! 차차!!” 이러다가 결국 “I’m gonna sit in the back next time!”이라고 했다. 왜 Good luck driving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체크인 후 4시에 행사장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3시 50분에 행사장 어디서 볼까? 하고 문자를 했더니 지네들 이제 출발한다고 4시 반에 보잰다. -_- 난 이미 호텔 나왔다고요. 4시 반이 되어서 현지 클라이언트와 만났다. 상사 1, 2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냐고 했더니 주차장 찾는대라고 한다.
5시가 넘어서 나타났다. 분명 주차장은 왼쪽인데 오른쪽에서 나타났다.
주차장에서 나와서 그냥 쭉 오면 되는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반대로 가서 건물을 한 바퀴 삥 돌아왔다. -_-; 그것도 건물 안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야외로… 땀 뻘뻘 흘리면서 나타나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riends의 챈들러와 조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이래놓고 화났는지 “나 내일 차 반납할 거야!” 이러더라고 상사 2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만난 클라이언트는 “나도 차 있지만 운전 안 하고 그랩 타고 다녀” 라고 한다.
한국 회사에서 서울국제도서전을 힘 줘서 꾸몄었기에 그보단 못해도 미국 본사에서 이것저것 챙겨온 줄 알았는데 배너 하나, 그리고 테이블보 하나 들고 와서 꾸몄다고 좋아했다. 대신 공짜로 뿌릴 책들을 들고 왔다. 미국인들은 이런 게 다르구먼 싶었다. 그리고 60×30쯤 되는 테이블에 책들과 브로셔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_- 그런 거야말로 그때그때 책 빠지고 들어오는 대로 디스플레이해야 하는 거 아닌가?
무료 책 나눠줄 때 추첨 방식도 어떻게 하고 어떻게 홍보할 건지 생각도 안 했다. 우릴 도와주는 협력사에서 “우리 SNS에 홍보해 줄까?” 그러니까, “매우 좋죠!” 라고 한다. 어떻게 홍보할 건지, 몇 명까지 줄 건지 얘기 안 함 ㅋㅋㅋㅋㅋㅋ 그냥 오케이 하면 끝임. 어차피 상사들은 다른 미팅이 있을 수도 있어서 일단 방식과 소통은 내가 담당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했던 경험을 살려서 아이디어 투척했더니 그대로 오케이 남. -_-
하지만 확실히 영업자로서 P이자 E인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느낀 부분이 있다. 손님들이 책들을 둘러보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다가가서 대화를 나누고 스몰 토크를 쉽게 해대고, 솔직히 4일 행사에서 나눠 줄 샘플 치고 너무 안 들고 오셨는데 첫날부터 “Gift to you!” 이러면서 손님한테 두 개밖에 없는 샘플 중 하나를 그냥 줬다. 그러면서 대신 주변에 많이 말해 달란다. 그리고 묻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에게 다가가 책 소개도 술술 해대고, 마닐라 최대 서점에 아무 정보도 없이 가서 명함 뿌리고 미팅 잡아 왔다.
거의 미국부터 필리핀 올 때까지 제대로 잠도 못 자서 피곤하다면서 6시 넘었을 때 즈음 가겠다고 했다. 난 속으로 “저녁은 각자 먹나? 아까 봐둔 데 가 볼까?” 하고 좋아서 보냈다. 3분 후 돌아와선 “까먹었는데, 저녁 같이 먹을래?” 이러길래 그냥 수락했는데 하지 말걸 그랬다.
메뉴를 나보고 정하래. 배려였지만 저들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너무 피곤해 하길래 1) 주차장에서 가까운 곳 (먹고 바로 가서 쉬세요) 2) 현지 음식 같은 곳을 보고 그냥 들어갔다. 눈 돌아서 신나게 먹기 시작하니 또 살아나서 둘의 수다가 피어났다. 듣기엔 웃긴데 그쯤부터 난 먹고 있는데도 기가 빨렸다.
드디어 다 먹고 나왔다. 주차장이 바로 저기니 이번엔 길 잃지 말고 가라고 했다. 그랬더니 상사 1이 “호텔까지 걸어서 바래다 줄까?” 라고 한다. 아유 너나 네 호텔 잘 찾아가세요 ㅋㅋㅋㅋㅋㅋㅋ 내 호텔은 아까 먹은 곳=도서전 장소에서 실내 이동으로 5분 거리란 말이에요. 자기들은 차로 20분 거리에 호텔 잡아 놓고!! 그리고 내가 호텔 빨리 가라고 주차장 가까이에 잡는다고 했잖아요옷!
내 전임자도 이 출장에 함께 했는데 얘도 즉흥적으로 오늘 저녁 미팅 때 안 오겠다고 하더니, 필요한 브로셔도 전달 안 했다. 말도 안 하고 내 호텔로 퀵으로 그것도 밤 10시 넘어서 보냈다. 내 방 번호도 안 물어보길래 그냥 지가 아니까 보냈겠지 하고 땡큐하고 바로 골아떨어졌다. 오면 리셉션에 맡기겠지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방 번호 뭐야?”라는 문자와 콜이 와 있었다. 미안해. 오늘 너무 기 빨렸었어.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