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오전에 마닐라에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보기로 했었다. 그런데 전날 그쪽으로 미팅을 갔던 상사 1이 예배는 포기하자고 한다. 가는 데 90분 걸렸다고… 3시 비행기지만 오고 가는데 마음이 불안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쉬운 척하면서 속으로 (오 주여 감사함다) 생각했다. 예배가 싫은 것보다 그냥 너무 지쳐서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었다고나 할까.
아침에 일어나서 가방 싸고 마닐라 온 지 닷새 만에 호텔 조식을 먹기로 했다. 조식 불포함으로 예약하길 잘 했지, 이렇게 마음이 불안해서 밥도 제대로 안 먹고 다닐 줄 어떻게 알았겠어. 그리고 먹고 나서 생각했다. 어우, 불포함 하길 매우 잘했어. 그저 그런 먹을 만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심지어 오랜만에 아침 먹고 나서 배가 꼬닥꼬닥 아파서 활명수 하나 때렸다. 어이구 억울해…
상사 2는 미국으로, 전임자는 미리 싱가포르로 출발했고 나는 상사 1과 함께 공항으로 갔다. 고객 없이 우리끼리 대화할 땐 진짜 영어가 술술 나왔다. 물론 완벽하게 하는 건 아니고 그냥 문법이 틀려도 “you know?”라고 얼렁뚱땅 넘어가면서 쭉쭉 대화를 이어나갔다.
비행기는 한 시간 딜레이가 됐고, 여유가 생긴 우리는 한국 일정까지 얘기를 했다. 남녀 단둘이 출장은 안 된다는 회사 방침에 따라 (매우 보수적임) 상사 1은 나보다 한나절 일찍 싱가포르에서 한국으로 떠난다. 17일, 18일을 혼자 있어야 하는데 한국 야구를 보고 싶다고 했다. 마침 6시 반에 경기들이 있는데 이 인간이 딱 6시 10분 도착 비행기잖아. 그 큰 짐가방 들고 바로 송도로 가시겠냐고요… 엄청 짱구를 굴리더니 그냥 포기했다. 미리 알았으면 내가 알아봐 줬지. 한국 일정도 마닐라 와서 바꾸고 통보를 해서 손쓸 새가 없었다.
비행기에서 창문이 없는 줄의 창문석을 잡아서 ㅋㅋㅋㅋㅋㅋㅋㅋ 제기럴 앞좌석의 창문 반쪽을 몰래 봐야 했다. 일부러 밖을 보려고 잡은 건데 그건 생각 못 했네. 제기럴. 그런데 내가 문제가 아니라 옆에 탄 아주머니들이 내 쪽으로 손을 쭈우우우욱 뻗어 그 반밖에 없는 창문을 영상으로 찍는 게 아닌가 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자주 그러시는데 또 나만 보면 생글생글 웃으며 땡큐 땡큐를 외쳐서 나도 같이 웃음이 났다. 뭐, 뱅기 오랜만에 타 보시나 보지. 나도 촬영은 포기하고 그냥 잤다.
싱가포르도 전자 입국 신고서가 있는데 상사 1은 모르고 있었다. 나에게 내야 할 서류가 있냐고 물었다. 아… 필리핀 때나랑 상사 2 안 알려 준 것도 그냥 암 생각이 없었던 거구나? 이해가 갔다. 분명 링크 미리 줬는데 제때 작성 안 해서 자동 출입국 심사에서 걸려서 한참 후에야 나왔다. -_- P 맞네요 맞아.

싱가포르도 상사 1은 힐튼에 예약했고 전임자도 따라 예약했다. 난 동생에게 물었을 때, “거기 리틀 인디아 타운인데? 굳이?” 그래서 다른 데 잡았다. ㅋㅋㅋㅋㅋㅋ 전임자가 인도인인데 자기가 지금 인도에 있는지 싱가포르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려줄 걸 그랬나 싶지만 자칭 힐튼맨 상사 1은 그래도 힐튼에 묵었을 거다.
나중에 전임자가 하는 말이, 싱가포르에도 콘래드가 있단다. 물론 가격은 감당 못하게 비싸지만.
상사는 힐튼으로, 나는 이비스로 각각 그랩을 잡아 떠났다. 내 기사는 중국계 싱가포르인인지 영어 억양이 너무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싱가포르도 한국인에 대해 우호적이어서 K-Pop부터 드라마까지 나에게 하고 싶은 수다는 다 떨었다. 난 그저 알아듣는 척, 으흠, 오호? 오케이, 예예… 이러고 맘. 게다가 우리가 있는 주간에 포뮬러 원이 있다고 굉장히 도시가 활기찰 거라고 했다. 들으며 생각했다. 상사 1과 전임자는 꽤나 아쉬워하겠군.
그랩에 급하게 카드를 연결해서 그런지 현금 결제로 그랩이 잡혔다. 제길, 나 현금 없는데!! 싱가포르에서 현금 쓸 생각 1도 안 했는데~~😱 내가 너무 당황해하니까 기사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다음 손님 태우러 가야 한다며 자기 핸드폰 번호로 주면서 이쪽으로 이체를 해 달라고 했다. 무슨 얘긴지 몰라서 일단 알았다고 했고 미안하다고 내 명함을 전달했다. 기사는 대체 이 명함을 왜 주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믿음이 좋은 분이시구만요… 내가 이러고 먹튀하면 어쩌라고…

다행히 동생이 이체해 줘서 10분 만에 문제 해결.
마닐라와 비슷한 가격의 이비스 호텔은 매우 구질구질했다. 전 호텔의 1/5도 안 되는 크기의 방에, 시설은 낡았고 물도 주지 않았다. 수돗물 깨끗하니까 마시란다. -_- 아는데 맛없잖아요. 미친 비즈니스호텔… 다신 오나 봐라.
이래저래 정리하고 이메일 처리 좀 하고 나니 순식간에 9시가 돼서 호텔 바로 옆에 7/11 가서 급하게 물 두 병, 닛신 칠리크랩 맛 컵라면, 트로피컬 푸릇 주스 하나 사 왔다. 라면은 내일 먹어야징~ 오늘은 그냥 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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