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한국에서 미팅이 있지만, 한국은 내 나와바리고 직접적인 영업보단 출판부 쪽 요청으로 만나는 미팅도 있어서 부담이 덜하다. 싱가포르 고객은 일전에 개인적으로도 보고 자주 줌 미팅으로 만나서 얘기를 하기도 해서 긴장은 덜했지만, 이렇게 공식적인 미팅으로 서로를 알아가는 건 좀 긴장되긴 했다. 이 노무 I 성향이란… 고객과 캐주얼하게 만날 수도 있는데, 그러기 싫어서 동생 보러 싱가포르 갈 때도 몰래 다녀온 적도 있다. ㅋ
아침엔 전날 사 둔 칠리 크랩 라면을 먹어봤다. 중고등학교 때 학교 매점에서 닛신 컵라면을 팔았다. 그때는 학교에서 먹을 수 있는 동양 음식이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동양 맛은 아니고 그냥 닭 국물 맛. 그때 생각이 나서 샀다. 그리고 싱가포르 한 스푼 추가한다고 칠리크랩 맛. 건더기에 게맛살 같은 게 둥둥 떠있고 칠리 페이스트를 넣어 먹으니 매콤하고 좋았다. 칠리 페이스트 중에서 달달한 부분은 국물 밑으로 가라앉아 버려서 단 맛은 잘 느끼지 못했다. 다행이라고나 할까. 단 라면 싫어.
혹시나 현금이 필요할까 해서 동생이 아침에 현금과 교통카드를 전해주러 왔다. 온 김에 방 보더니, “음” 이러고 수긍했다. 싱가포르가 선진국이 맞네. 물가가 비싼 게 맞고… 체크아웃은 다음 날 하기로 되어 있지만 모든 일정이 끝나면 그냥 동생 집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근처 로컬 가게에서 Kopi 마시고 동생은 토스트까지 먹은 후, 상사가 묵는 호텔로 걸어가기로 했다. 1.5킬로미터 정도밖에 안 되니 출근 시간에 차에 막히느니 걷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가는 길에 리틀 인디아를 지나오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전임자의 문자가 이해가 갔다. 와우 진심 너무 인도야! 게다가 주말에 광란의 밤을 보냈는지 길거리 여기저기 쓰레기가 엄청났다. 싱가포르가 이래도 돼? 이랬더니 동생 왈, 아침에 가게들이 다 치운단다.
10시 미팅이라고 9시 45분에 만나자더니 전임자는 5분 늦게, 상사 1은 10시에 내려왔다. -_- 야… 왜?라고 물으니, 아침부터 동네를 뛰었는데 길을 잃어서 제때 못 돌아왔단다 ㅋㅋㅋㅋ
10시 미팅은 잘 지나갔다. 그동안 꾸준히 만나온 것도 있고, 고객들도 매우 스위트한 분들이고, 그냥 다들 너무 좋았다.
점심은 전임자가 “인도 음식만 아니면 돼!”라고 해서 ㅋㅋㅋㅋㅋㅋ 버거 먹으러 갔다. 가서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미국 회사가 1년에 한 번 모든 직원을 본사로 불러 축제처럼 시간을 갖는데 올해부터 그 행사에 계약직은 올 수 없다고 했단다. 전에는 해외의 모든 직원들도 경비 다 대주고 오게 했는데!!! 난 아직 가 보지도 못했는데 이젠 그 기회가 사라졌다. 그것도 너무 급작스럽게 결정되어서 이미 행사에 가려고 비행기를 예약한 인도 직원들은 다 취소했단다. ㅡ.,ㅜ 근데 웃긴 게 올해 이 행사의 주제가 “글로벌”이란다. ㅋ 근데 글로벌 직원 아무도 못 간다.
3시 미팅 전에 시간이 좀 남아서 각자 호텔에서 쉬고 미팅 장소에서 만나자고 하고 돌아왔다. 와서 침대에 눕는 순간 문자가 왔다. 3시 미팅 고객이 자기 아기가 저녁에 수술이 잡혀서 그러는데 미팅을 두 시 반으로 당길 수 없겠냐고… 바로 일어나서 나갈 준비했다.
3시 미팅 고객은 원래 매니저가 따로 있었다. 그와 나는 매우 잘 지냈다. 간간이 수다도 떨고… 최근 아버지와 형이 순차적으로 돌아가셔서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와는 다음 날 만나기로 했다. 그래서 그에게 오늘 네 상사 만난다고 했더니 그가 메시지를 했다. “He’s everything with a pinch of salt.” 이런 표현 처음 들어 봐서… 솔트? 짠돌이란 말인가? 싶었는데 챗GPT가 알려줬다. “똑 부러지거나 직설적인 면이 있다” 또는 “살짝 거침, 솔직함.” 아하… duly noted.
갔는데 아, 뭔 소린지 알아버렸다. 이번 미팅에서 난 내 상사와 전임자의 표정에서 생기를 잃어가는 걸 느꼈다. 매우 거칠었고 말도 빠르고, 배려나 칭찬이라고는 “너네 배송 짱 빨라”이고 하고자 하는 말은 “너네가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없어. 그저 너희의 지금의 선택으로 너넨 많은 고객을 잃었어”다. 아, 음… 네… 예예… 그럼에도 그와 몇 번 일을 해 온 전임자는 이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고 잘 받아쳤다. 그 아니었으면 녹다운 당했을 뻔. 미팅 끝나고 나서야 전임자는 이 사람은 원래 이렇게 성격과 언행이 거칠기로 유명하단다. 알면 좀 알려주지 그랬냐.
셋 다 완전 기 빨려서 나오는데 전임자가 debrief가 필요하다면서 마리나베이샌즈 전망대 가잔다고 했다. 자기가 예약 없이 갈 수 있는 꼼수를 안다나. 그게 뭐냐면 그냥 “저희 그냥 한잔하려고요.” 그럼 된댄다. ㅋㅋㅋㅋㅋ 막상 갔는데 입장료 35불이 있고, 그 금액은 음료 주문하면 거기서 비용 차감해 준단다. 그랬더니 다들 비싸다고 안 간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야, 우리 그랩 타고 여기까지 왔다고요. 결국 가서 돔 형태로 된 애플 매장에서 싱가포르 다운타운 쪽 바라보는 모양으로 사진만 진탕 찍고 나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디에 올리시려고요?
그냥 마리나베이샌즈 다니면서 우리끼리 수다를 떨었는데 너무 웃겼다. “야, 한국 목욕탕 가 봤어? 모로코 목욕탕 가 봤어? 터키 목욕탕 가 봤어? Dude man~ it’s so gnarly!!!”라면서 각국에서 발가벗겨져 때 밀리고 마사지 받은 얘기하는데 개웃겼다. “너넨 그게 이상하냐? 난 매우 괜찮은데?” 그랬더니 나보고 “Dude!”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상사는 저녁 개인 미팅 하러, 전임자는 밤 비행기 탈 준비하러, 난 동생 만나러 그 자리에서 안녕하고 헤어졌다.
호텔에서 대강 짐을 다 가방에 쑤셔 넣고 체크아웃을 하고 동생 집으로 돌아왔다. 확실히 긴장되는 미팅이 다 끝나선지 없던 식욕이 돌아와 저녁도 신나게 먹고 (많이는 아니고…) 두리안 아이스크림도 먹고 행복했다.
내일 조금 여유 부리고 돌아가면 되겠지. 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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