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사랑에 답함』 오디오북을 검수 중인데, 성우의 목소리와 연기에 전율이 돋는다. 나태주 시인의 목소리보다는 더 중후하고, 어투도 충청도가 아닌 서울 말씨를 쓴다. 하지만 베테랑답게 시인의 에세이를 정말 몰입도 있게 읽어 주니, 눈으로 읽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부분도 오디오로 들으며 잠시 멈추고 웃게 된다.
분명 톤은 나태주 작가의 톤이 아닌데, 들려주는 이야기는 분명 작가의 것이다. 작가 스스로 읽어 주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게 바로 나레이터(성우)의 힘이 아닐까 싶다.
요즘 제작비 절감과 AI 발전으로 전문 성우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하지만 적어도 향후 몇 년간 에세이나 소설 분야 낭독에서는 전문 성우가 계속 필요할 것 같다.
반면, AI 낭독의 놀라움을 느낀 책도 있다. 밀리의 서재에서 제공하는 『최강록의 요리 노트』다. 얼마 전 팬심에 종이책을 사고, 집에서 방 청소를 하며 여유를 부릴 때 오디오북을 들었다. 일반 TTS나 기본 AI 목소리가 아니라, 최강록의 음성을 딴 AI 낭독이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듣다 보면 정말 본인이 읽어 주는 것 같았다. 실제로 최강록의 평소 말투가 크게 감정 기복이 드러나지 않기도 하고, 책 내용도 감정을 실어야 할 부분이 없어 AI 낭독이 꽤 성공적으로 느껴졌다.
만약 나태주의 글을 AI가 읽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지금처럼 이야기에서 반짝이는 생명력을 느끼긴 어려웠을 것 같다. 검수 중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낭독 속도도 정속으로 맞춰 놓고 듣고 있다. 충청도의 여유로움을 느끼고 싶어서다.
일전에 나도 AI 음성으로 오디오북을 제작한 적이 있다. 기계가 알아서 오디오를 만들어 주면, 제작자는 적당한 길이로 자르고 효과음과 인트로 곡만 편집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 작업은 달랐다. 성우의 낭독을 엔지니어가 수동으로 조절하며, 최대한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들리도록 끊어 읽는 부분을 표시하고 들리는 대로 대본을 수정해야 했다. 그럼에도 낭독에 감정을 싣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소설이나 에세이가 아닌 다른 장르의 책을 선택해 제작했다.
언젠가 AI가 더 발전하면 단순히 목소리만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의 내용과 맥락을 파악해 감정과 톤까지도 생성해 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그 미묘하고 복잡한 뉘앙스를 완벽히 구현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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