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가 오래 전부터 시라노를 노래불렀다. 분명 뮤지컬 탈덕 한다고 했는데 시라노 한 번 다녀오더니 존잼이라며 난리가 났다. 나랑은 알라딘 같이 보기로 해 놓고 시라노도 같이 보자고 꼬셔서 얼결에 알라딘 관람 한 주 전에 시라노도 보게 되었다.

여하튼 스토리는 추남인 시라노가 짝사랑하는 록산이 크리스티앙을 사랑하게 되자 럭산의 행복을 위해 말주변과 글 표현력이 잼병인 크리스티앙을 대신해 그녀에게 사랑 편지를 써 주고 마음을 전달하는 이야기다. 누군가의 사랑(연애)를 뒤에서 도와준다는 설정에 시라노 연애조작단이라는 영화인지 드라마도 모티브를 얻었나 보다.
그래서 아무리 친구가 재밌다고 해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조형균을 하데스타운 이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컸다. 조형균이 미남은 아니지만 하데스타운에서 본 그의 연기력과 노래 실력은 인상깊었기 때문이다.
감상평(스포일러)
1막은 절반은 내내 웃느라 난리가 났다. 친구가 3열을 잡아 줬는데 꽤 잘 보였다. 그럼에도 오글 들고 오지 않은 나를 원망했다. 배우들의 세밀한 표정 연기를 보기엔 내 시력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친구는 시라노 존잼이다, 그리고 엄청 슬프다는 얘기만 해서 웃음에 대해선 완전 무방비로 봤다. 그런데 시작부터 터 너무 뻘하게 터지고 웃겼다. 백작이 록산의 제스처를 오해하는 것과 시라노가 사람들의 시선을 눈치채고 자기를 쳐다보는 것을 희화화 하는 것부터 너무 웃겼다. 그가 록산을 짝사랑하는 것도 찌질하고 코믹하게 표현했다.
여기서 웃음을 더하는 건 잘생긴 백치 크리스티앙이었다. 말주변이 없어서 절망하고, 자기 그대로를 록산에게 보여주고 싶어 시라노의 도움을 물리쳤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겨우 “네”밖에 없었다. 구제불능임을 인지하고 시라노의 말을 따라하는 것마저 다 이해하지 못해 실수를 연발하는 장면이 짠하면서도 유쾌했다.
하지만 이면에 크리스티앙을 미워할 수도 없고 록산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의 진심을 크리스티앙의 것처럼 둔갑시켜 전하는 시라노를 보자니 마음이 미어질 수밖에 없었다. “네”무새 크리스티앙을 위해 얼굴을 가리고 사랑고백을 하는 시라노를 보며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드 가슈 백작이 크리스티앙과 시라노가 속한 가스콘 부대를 전방으로 보내자 록산이 시라노에게 크리스티앙을 지켜달라고, 방패가 되어 달라고 울며 부탁할 때 “저 나쁜 년”이라고 중얼거리며 울었다.

그렇게 1막 후반의 오열은 2막에서도 이어졌다. 1막처럼 재미있는 포인트는 덜했지만 매일같이 록산에게 소식 전하는 시라노의 순애보에 마음이 짠했다. 2막의 반전은 크리스티앙의 각성이다. 시라노의 도움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얻은 것도 모자라 전쟁 중에서도 시라노의 비호를 받는 그는 완전 운 좋은 순진한 청년 쯤으로만 보였다. 그러나 그가 이제까지 그 자신으로 사랑받아본 적 없고, 가족도 그를 챙기지 않는 혼자라는 것, 그래서 시라노에게 더 기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록산이 전쟁터로 그를 찾아와 당신이 어떻게 생겼든 자기가 사랑하는 건 그의 영혼이라는 말에 그의 유일한 레거시인 외모마저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끼고 절망하는 것에 연민을 느꼈다. 록산이 말하는 그의 영혼은 시라노가 대신 써준 편지의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라노에게 분노하며 따질 때 그가 불쌍하다고 느꼈다. 그가 죽을 때에도 마지막까지 록산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애쓰는 그가 너무 안타까웠다. 자기 진심을 그제서야 자기 말로 표현하는 거니까.
크리스티앙의 마음에 짐을 지고 15년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록산에게 진심을 전하지 못한 시라노도 안타까웠다. 드디어 전해진 마음을 깨달았을 때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록산도 안타까웠다. 결국 모두의 사랑은 진심이었지만 제대로 이어진 마음은 없었다. 어찌 안 울고 배겨!!!ㅠㅠㅠ
Reciprocated love and being loved for who you are
내 모습 이대로 사랑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새삼 깨닫는다. 외모에 가려져 진심마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글로만 전하는 일부만이 진심(진짜)이라고 치부되는 것도 온전히 받아들여졌다고 여기기 어렵다. 하지만 진심이 전해지는 상대의 일부를 통해 그 사람의 전부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진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록산은 크리스티앙의 진심의 근원을 착각했지만 그에게 말하려던 것은 아마 그런 의미가 아닐까 짐작한다. 어떤 조건이라도 사랑한다고,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한다고.
애초에 자신의 외모에 위축되지 않았다면, 언변에 재능이 없음을 솔직하게 보였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시라노도 록산도 서로 엇갈리고 괴로워할 일 없이 사랑하며 행복하지 않았을까? 크리스티앙도 적어도 한 번은 솔직하게 자신을 보이고 사랑받을 기회를 시험할 수 있지 않았을까?

1막 후 다급하게 찰칵!
P.S. 하데스타운의 조형균은 보이지 않았다. 노래를 할 때에서야, ‘아, 조형균 맞네’ 싶었다. 순수했던 오르페우스는 어디가고 어떻게 그렇게 능글맞은 시라노가 될 수 있을까? 목소리도, 연기 톤도, 전혀 다른 같았다. 오글이 없어서 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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