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영상 편집 외주를 진행하면서, 작업 범위가 얼마나 쉽게 흐려질 수 있는지 다시 실감했다. 처음에는 비교적 가벼운 수정 작업이라고 이해하고 시작했는데, 진행할수록 편집 범위가 계속 커졌고, 그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 방식 때문에 적지 않게 피로감을 느꼈다.
이 글은 누군가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려는 목적보다는, 내가 이번 작업에서 무엇을 경험했고 왜 힘들었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하는지 정리해 두기 위한 기록이다.
1. 처음 이해한 작업 범위
처음 이 프로젝트를 받을 때 내가 이해한 범위는 “오디오 수정이 중심인 작업+전사+번역+자막”이었다. 기존의 일반적인 영상 편집 프로젝트처럼 처음부터 전체 편집을 새로 짜는 느낌은 아니었고, 비교적 부분적인 수정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소 10분 이상 영상 편집에 적용하던 단가 기준을 바로 적용하지 않았고, 정확한 비용을 별도로 먼저 합의하지 않은 채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작업량이 그보다 훨씬 적을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진행된 작업은 단순 오디오 수정 수준이 아니었다.
- 오디오 보정(화자 별 별도 보정)
- 자막 작업
- 영어 번역
- 코멘트성 문구 생성
- 문구 그래픽 텍스트 작업
- 제목 그래픽 삽입 요청
- 영상 중간 분할 및 별도 산출물 제작
- 기존 영상 오류 수정 및 일부 교체
이 정도면 사실상 “부분 수정”이 아니라, 점점 별도의 편집 프로젝트에 가까워졌다.
2. 생각보다 컸던 그래픽 텍스트 작업
특히 내가 피로를 많이 느낀 부분은 그래픽 텍스트 작업이었다. 처음에는 “짧은 문구 몇 개 생성하라”는 수준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소규모 추가 작업으로 보고, 별도 플랫 레이트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26분짜리 영상 안에 약 35개의 텍스트를 만들고 넣는 작업이 되었다.
이건 단순히 화면 위에 글자를 올리는 일이 아니었다. 내용 이해, 문구 생성, 문장을 화면용으로 짧게 다듬기, 어색하지 않게 배치하기, 타이밍 맞추기까지 다 포함된 작업이었다. 게다가 주제가 양자역학, 결맞음 같은 내용이어서 더 어려웠다. 내가 원래 그 분야를 아는 사람도 아닌데, “센스 있게” 코멘트를 만들어 달라는 식의 요청이 들어왔다. 이건 말은 가볍지만 실제로는 편집자가 내용까지 해석해서 표현해야 하는 추가 기획 작업에 가까웠다. 이걸 내가 왜 한다고 했을까…
돌이켜보면, 이 부분에서 내가 제일 힘들었던 건 “이걸 내가 여기까지 해야 하나?”라는 감정이었다. 내가 할 줄 안다고 받아버린 것도 내 책임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가벼운 부탁이 되는 건 아니다. 편집자가 전문 내용까지 이해해서 자연스러운 코멘트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면, 그건 이미 단순 편집 범위를 넘어선다.
3. 일정 공유는 늦었고, 데드라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 작업에서 또 하나 힘들었던 부분은 일정 공유 방식이었다. 상대는 “재촉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실제 내용은 운영팀이 유튜브 업로드 일정을 공지해야 하니 그 일정에 맞출 수 있는지 묻는 것이었다. 즉, 말은 부드러웠지만 실질적으로는 일정 확답 요청이었다.
문제는 그 일정을 너무 늦게 공유했다는 점이다. 업로드 일정은 이미 이렇게 정해져 있었다. Part 1은 4월 21일, Part 2는 4월 30일, Part 3는 5월 7일이었다. 그런데 이 얘기를 들은 시점에는 이미 시간이 촉박했다. 내 입장에서는 Part 3를 5월 7일 업로드에 맞추려면 최소 5월 6일까지는 최종본을 넘겨야 했고, 수정 반영까지 생각하면 사실상 2주 남짓한 시간 안에 꽤 많은 작업을 끝내야 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작업을 내 본업 외 시간에 하고 있었다. 한 영상당 대략 걸린 시간을 계산해 보면, 오디오 편집 4시간, 자막 작업 4시간, 번역 1시간, 그래픽 텍스트 작업 3시간 정도였다. 최소 12시간 정도가 들었고, 여기에 검토, 수정, 렌더링, 전달 커뮤니케이션까지 포함하면 실제 시간은 더 늘어난다.
나는 일정안을 다시 정리해서 제시했다. 4월 24일 Part 2 피드백 수령, 4월 26일~27일 Part 2 최종 전달, 4월 29일 Part 3 초안 전달, 5월 4일 Part 3 피드백 수령, 5월 6일 Part 3 최종 전달. 이건 내가 상대를 배려해서 최대한 맞춘 일정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5월 6일에 피드백을 주면 5월 7일에 최종본을 받을 수 있겠냐는 식의 질문이었다. 그 순간 느낀 건 단순히 “바쁘다”가 아니라, 내 작업시간이 너무 가볍게 여겨지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화가 나려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5월은 1일 근로자의 날, 5일 어린이날이 끼어 있었다. 그래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하루씩 일찍 전달하겠다고 했다.
4. 가장 힘들었던 건 Frame.io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이번 작업에서 내가 가장 짜증났던 건 사실 수정 요청의 내용보다도, 그 요청이 정리되지 않은 채 작업툴 안에 흩어져 들어왔다는 점이었다. Frame.io 코멘트를 보면, 도입 부분에 뭔가 필요해 보인다, 질문을 넣는 건 어떠냐, 여기서 아예 끊어서 다른 영상으로 가는 건 어떠냐, 중간 코멘트를 빼고 왼쪽 상단에 타이틀을 넣어 달라, 새 영상은 QNS 인트로로 다시 시작해 달라, 이런 식의 요청과 아이디어가 섞여 있었다.
문제는 이게 “확정된 수정사항”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것은 아이디어고, 어떤 것은 제안이고, 어떤 것은 실제 수정 요청이었다. 게다가 서로 다른 사람이 댓글로 질문을 주고받는 방식이었다. 내가 가장 피로했던 이유는 여기 있었다. 작업자에게 필요한 건 확정된 요청이다. 그런데 확정 전 논의가 작업툴 안에서 그대로 진행되면, 작업자는 편집자가 아니라 회의 참관자이자 의도 해석자가 된다. 원래는 내부에서 상의하고, 방향을 결정하고, 확정된 요청만 작업자에게 전달하고, 작업자가 반영하는 순서가 맞다. 그런데 이번엔 중간 생각들이 그대로 코멘트로 쏟아졌고, 나는 그걸 읽고 해석하고, 무엇이 확정이고 무엇이 제안인지 구분해야 했다. 이건 굉장히 피로한 방식이었다.
심지어 그것들이 결정 됐을 때는 추가 작업으로 돌아왔다.
5. 비용 이야기를 꺼내자, 추가 요청은 철회되었다
작업 범위가 커지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나는 결국 비용을 다시 정리해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그래픽 텍스트 작업은 생각 외로 작업량이 많아도 소액 플랫 레이트, 영상 분할은 추가 오디오 편집 비용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편집 범위가 계속 넓어지면서, 차라리 기존 10분 이상 영상 편집 기준으로 Part 2-1, 2-2를 각각 산정하는 것이 맞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메일로 범위가 예상보다 많이 확장되었고, 오디오 편집, 그래픽 텍스트, 제목 그래픽, 오류 수정 및 교체 작업 등을 따로따로 계산하기보다는 기존 편집 단가 기준으로 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정리해서 보냈다. 그 메일에는 상대 회사의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도 함께 참조(cc)했다. 그러자 바로 반응이 달라졌다.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항목은 하지 말고, 이미 넣어둔 좌상단 질문 텍스트는 삭제해 달라는 식으로 요청이 축소되었다.
이걸 보며 느낀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역시 기록을 남기고 범위를 공식화해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비용이 명확해지는 순간 상대도 “그건 하지 말자”고 정리할 수 있다는 것. 즉, 애초에 작업 범위를 더 빨리 분리했어야 했다.
6. 내가 느낀 감정들
이번 일을 하면서 느낀 감정은 단순히 “힘들다”가 아니었다.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짜증이었다. 내부에서 먼저 정리했어야 할 내용을 작업툴에서 주고받는 걸 보면서, 내가 왜 이 사람들의 논의 과정을 읽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은 피로감이었다. 계속해서 작은 수정처럼 말하지만 실제론 범위가 넓어지는 요청들이 쌓였다. 오디오만 수정하고 자막, 번역만 하는 줄 알고 시작했는데, 텍스트 생성, 타이틀 그래픽, 영상 분할까지 이어졌다.
억울함도 컸다. “센스 있게 코멘트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은 말은 가볍지만 실제로는 꽤 많은 판단과 노동을 요구했다. 내가 그 분야를 잘 아는 사람도 아닌데, 내용 이해부터 표현 설계까지 하게 되니 억울했다.
자책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할 줄 안다고 한 내가 병신이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애매하게 받아준 탓에 상대도 그걸 가능한 범위로 여긴 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유능하게 해낼 수 있다고 해서 그게 당연한 작업 범위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도 이번에 분명히 느꼈다.
가장 크게 남은 감정은 정 떨어짐이었다. 친구의 회사이고, 친구와 연결된 사람이라 처음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상대는 자기 쪽 일정과 손해에는 민감하면서도, 내가 밤에 들이는 시간과 피로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I can’t promise you, but I’ll try to tell you the posting schedule for the future edits, now that I partly know your working speed.”라니 그게 말이야 방구야. 내 작업 속도와 상관없이 일정은 미리 공유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지점에서 정이 뚝 떨어졌다.
7. 이번 일을 통해 정리한 기준
이번 경험을 통해 앞으로는 몇 가지 기준을 분명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처음에 작업 범위를 더 명확히 적을 것
-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어디까지 할 수 있다”로 말할 것
- 일정은 내가 역산해서 먼저 제시할 것
- 피드백 마감일을 상대 책임 구간으로 분명히 둘 것
- 내부 논의와 확정 요청이 섞이면 정리해 달라고 요구할 것
- 내용 이해와 문구 생성이 필요한 작업은 편집과 별도 항목으로 볼 것
- 추가 산출물은 별도 프로젝트로 취급할 것
결국 이번 일은 “사람이 별로였다”는 감상으로 끝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내 노동을 더 정확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내가 잘못해서 피곤했던 게 아니라, 경계를 충분히 세우지 못해서 피곤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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