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로 영상 편집과 번역, 전사 일을 한다. 이번 건은 영상 네 개를 편집하고, 한국어 전사와 영어 번역까지 한 작업이었다. 5월 6일에 최종 결과물과 인보이스 네 장을 모두 넘겼다. 그리고 어제, 6월 4일에 정산을 두고 이야기가 나왔다. 한 달 가까이 지나서, 그것도 내가 미입금을 먼저 물어본 뒤에.
쟁점
쟁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전사비 3만 원. 재무팀이 이 항목에 대한 확인을 요구했다. 다른 하나는 번역 줄 수. “Yes”, “Hello”, “Exactly” 같은 짧은 발화는 한 줄로 인정할 수 없고, 한 줄은 왼쪽에서 오른쪽까지 절반 이상을 채워야 한다는 기준이었다. 이 기준으로 페이지 수를 다시 계산해 금액을 깎아 달라는 요청이 담당자 S를 통해 전달됐다.
문제는 시점이다. 5월 6일에 결과물과 인보이스를 다 넘겼고, 정상적인 흐름이라면 그 뒤 1~2주 안에 검수와 이의제기가 끝났어야 한다. 그런데 거의 4주가 지난 6월 4일에, 내가 미수금을 문의하고 나서야 이 이야기들이 나왔다.
2. 내 입장
인보이스는 수정하지 않기로 했다.
전사비부터. 나는 시급 정산으로 일했고, 전사의 최종 결과물은 자막 파일(SRT) 그 자체다. 자막이 곧 전사다. 그런데도 별도의 전사 텍스트 사본을 증빙으로 따로 내놓으라는 건, 같은 작업을 두 가지 형식으로 증명하라는 중복 요구다. 게다가 나는 2월에 이미 “내 전사와 캡션 작업은 최종 영상과 함께 제공하는 SRT로 검증 가능하다”고 고지했다. 그럼에도 자꾸 증명을 요구해서 verbatim 전사본도 전달한 상태다.
줄 계산도 마찬가지다. “절반 이상을 채워야 한 줄”이라는 기준 자체를 처음 들어 본다. 심지어 그 기준을 일을 맡기기 전이든 인보이스를 받기 전이든, 어느 시점에도 나에게 전달된 적이 없다. 만약 그런 기준이 있었다면 일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을 포함해 그간의 번역과 전사 방식은 내가 임의로 만든 게 아니라 외주 의뢰 전임자에게서 넘겨받은 기준이고, 그동안 Q는 그 방식으로 정산을 해왔다는 점이다. 받아들여 온 방식을 일이 끝난 뒤에 소급해서 뒤집는 건, 새 룰을 도입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그래서 사전에 고지되지 않은 기준으로 인도가 끝난 작업을 다시 계산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인보이스는 제출한 그대로 유지한다고 명확히 했다.
3. 짜증의 진짜 원인은 금액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일로 깎이는 액수 자체는 내 생활에 영향을 주는 수준이 아니다. 안 받아도 그만인 돈이다. 그런데도 굳이 인보이스를 고치지 않고 입장을 분명히 한 건, 금액이 아니라 방식 때문이다.
정리해 보면 짜친 지점은 세 가지다.
첫째, 조건이 사후에 등장했다. 전사 증빙 요구도, 줄 계산 기준도 전부 일이 끝난 뒤에 나왔다. 사전에 고지됐어야 할 기준이 인도 후에 등장하는 같은 실패가 반복됐다. 심지어 내가 요구한 증빙을 줬음에도 또 다시 증빙을 문제삼았다.
둘째, 받아들여 온 관행을 뒤집었다. 과거에 같은 방식으로 정산해 왔다면, 지금 와서 줄 기준을 바꿔 깎으려는 건 확립된 거래 관행을 일방적으로, 그것도 소급해서 변경하는 것이다.
셋째, 조율 책임이 거꾸로 넘어왔다. 기준을 전달하면서 “재정팀에 해 달라고 하세요”라는 식이면, 기관 내부 규정을 외부인인 나에게 통과시키는 책임이 거꾸로 나에게 떨어진다. 발주자가 컨택 포인트고 나는 권한 없는 외주자인데, 내부 조율을 나더러 풀라는 건 위치가 틀렸다.
4. 담당자의 무책임함
담당자 S 입장에서 억울할 만한 부분이 있을까 싶어 고민해 봤다.
S는 규칙을 만든 사람이 아니라 재무팀의 요구를 전달한 사람이다. 증빙 요구의 명분 자체도, 공적 자금을 다루는 기관이라면 정산 단계에서 증빙을 요구하는 게 컴플라이언스상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이게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증빙은 SRT로 이미 갈음되는데 같은 작업을 다른 형식으로 반복해서 요구한 점, 사전 양해 없이 사후에 통보한 점, 그리고 내부 조율 책임을 외주자에게 역으로 넘긴 점은 출처가 재무팀이든 아니든 컨택 포인트가 했어야 할 일을 안 한 결과다. 룰의 정당성과 그 룰을 누가 어떻게 전달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사실 룰도 정당하지 않다. 그런 룰 사전에 알려줬다면 난 이 일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5. 결론
이 건은 입장을 전했고 공은 넘어갔으니, 받으면 받고 안 주면 그 기준으로 다음 거래를 하지 않으면 된다. 대신 다음을 위해 기준을 박아 둔다.
- 착수 전에 범위, 단가, 줄 계산 기준, 이의제기 기한을 서면으로 확정한다. 전임자에게 받은 기준이 있더라도, 그 기준이 무엇인지 발주자와 한 번 더 명시적으로 맞춰 둔다.
- 인보이스에 “발행일로부터 N일 내 이의가 없으면 확정, 이후 조정 불가”를 명시한다. 사후 소급 변경의 틈을 문서로 막아 둔다.
사실 앞으로는 S로부터는 일을 받지 않을 생각이다. 그의 상사 SK와 일 할 때도 좀 답답했지만 조율에 있어선 내 입장을 잘 배려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S는 그런 조율마저 없으니 감정 소모하며 함께 일할 이유를 못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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