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부터 어지럼증이 가시지 않아 반차를 내고 피검사, 엑스레이, 심전도, 소변검사를 받았는데 결과가 아래처럼 나왔다.
혈액검사 결과상 헤모글로빈 8.6(정상 12), 페리틴 10.6(정상 30)으로 실혈로 인한 철결핍성 빈혈 진단을 받았고, 원인 파악을 위해 산부인과 예약 진료를 별도로 받으라는 안내가 있었음. 3시 전에 나가야 하는 일정상 당일 철분 주사 수액은 생략하고, 오늘 철분제 처방만 받아 귀가하기로 결정함. 주사 치료(주 1회, 총 3~4회)는 8월 13일 12시경 재방문하여 시작하기로 함. 보험 적용 시 치료비 약 90% 절감 가능. 운동(유산소·PT 주 4회)은 심장 부담을 이유로 의사가 일시 중단 권고. 일주일 후 재진 예정.
헤모글로빈은 알겠는데 페리틴은 처음 들어봐서 찾아보니 몸에 저장된 철의 양이라고 한다. 헤모글로빈이 지갑 속 현금이라면 페리틴은 통장 잔고인 셈인데, 현금이 떨어졌다는 건 통장까지 이미 긁어 썼다는 소리다. 그래서 운동을 해도 크게 효과도 없고 심장에만 무리가 간다고 했다. 지금은 괜찮지만 심전도 검사에서 살짝 밀리는 소견도 있고 이렇게 지속하다가는 비대해진다고 했다. 결국 빈혈 치료 끝날 때까진 운동을 잠시 쉬기로 했다.
생리 기록
산부인과 예약을 하고 나서야 앱을 열어봤는데 최근 여섯 번이 이랬다.
| 시작일 | 주기 | 출혈 기간 |
|---|---|---|
| 3월 25일 | 41일 | 8일 |
| 5월 5일 | 25일 | 7일 |
| 5월 30일 | 26일 | 6일 |
| 6월 25일 | 17일 | 9일 |
| 7월 12일 | 21일 | 7일 |
| 8월 2일 | — | 10일 |
41일에서 17일까지 널을 뛰고 출혈 기간도 조금씩 길어져서 마지막엔 열흘이었다. 그런데 앱 요약 화면에는 평균 주기 26일, 평균 출혈 7일이라고 떠 있다. 1년치를 평균 낸 숫자라 최근 몇 달의 변화가 그 안에 곱게 묻혀 버린 건데, 요약만 보면 나는 아주 건강한 사람이다.
출혈량도 그제야 정리가 됐다. 대형 패드를 하루 여섯 개 쓰고 많은 날은 두세 시간마다 갈았으며, 밤에 새서 깨는 일이 잦아 속옷이 젖으니까 방지용 팬티를 따로 입고 다녔다. 한 주먹만 한 덩어리가 나온 적도 있는데 이걸 그냥 생리가 좀 센 편이라고 생각했다.
8월 18일
오전에는 공단 무료 검진(유방암·자궁경부암)을, 오후에는 산부인과 외래를 국립암센터로 잡았다. 자궁경부암 검진은 자궁경부 세포만 보는 거라 내 출혈과는 상관이 없어서 진료를 따로 잡은 것이다.
질초음파를 했다.
초음파 결과 자궁근종 다발성 확인 — 가장 큰 것 6cm 내외, 자궁 크기 성인 남성 주먹 두 개 합친 수준으로 비대. 근종이 자궁내막면 안팎에 다수 분포하여 근종만 절제는 사실상 불가 판단.
근종만 떼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안팎으로 퍼져 있어서 다 떼어내면 자궁이 ‘너덜너덜’해진단다. 그럼 그 큰 걸 어떻게 꺼내냐고 물었더니 복강경으로 위에서 자른 뒤 아래로 뺀다고 했다. 계란 두 개면 나쁘지 않지, 빠질 만도 하지 뭐. 그러고 보니 몇 달 전부터 아랫배 어딘가가 딱딱하게 만져진다고 느끼긴 했었다.
세 가지 옵션
의사가 옵션을 세 개 주고 내가 고르라고 했다.
- 복강경 자궁적출술. 생리 자체가 없어지고 원인을 통째로 빼는 거라 제일 깔끔하다고 한다.
- 생리를 멈추는 호르몬 억제 주사 또는 경구약. 난소 기능을 일시 차단해서 근종으로 가는 혈류를 줄이고 생리를 멈추는 동안 빈혈을 채우는 방식인데, 약을 끊으면 원상복귀다.
- 빈혈약 먹으면서 버티기. 폐경이 멀지 않다면.
미레나는 유방암 병력이 있으면 권하지 않는다고 해서 처음부터 나가리였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미레나를 하라고 했었는데.
그리고 헤모글로빈 8.6에서 바로 수술하는 건 조건이 나쁘다고 한다. 수술 중 출혈에 쓸 여유분이 없고 회복도 느리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가든 일단 피부터 채워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2번은 1번의 대안이면서 동시에 준비운동이기도 한 셈이다.
임상시험
호르몬 억제로 간다면 외래에서 류프로렐린을 맞거나(한 달에 한 번, 20~40만원) 지금 진행 중인 임상시험에 들어가거나 둘 중 하나다. 린자골릭스와 류프로렐린을 비교하는 연구인데, 린자골릭스는 다케다가 만들어서 유럽에서는 이미 파는데 국내에는 아직 안 들어온 약이라고 한다.
처음엔 위약 대조인 줄 알고 겁을 먹었다. 6개월을 아무것도 없이 흘려보내는 쪽에 걸릴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다시 들어보니 한쪽은 먹는 약이고 한쪽은 주사라 생김새가 다르기 때문에, 뭘 받았는지 모르게 하려고 참여자 전원에게 주사와 알약을 다 준다고 한다. 진짜 하나에 가짜 하나를 짝지어 주는 식이라 어느 쪽에 배정되든 약은 들어가지만, 대신 내가 뭘 먹고 있는지는 끝까지 모른다.
일정은 최대 65주로 스크리닝 17주, 투약 24주, 추적관찰 24주다. 스크리닝 기간에는 생리 첫날부터 닷새 사이에 병원에 와서 질초음파를 받아야 하고 총 8회를 방문해야 하는데, 결국 생리 날짜에 맞춰 휴가를 내라는 뜻이다. 내 자궁이 회사 캘린더를 참고해 줄 리는 없고.
대신 검사비는 전액 지원이고 방문할 때마다 15~17만원을 준다. 골밀도 검사가 프로토콜에 들어 있는 것도 마음에 드는데, 이 계열 약은 뼈를 깎아먹을 수 있어서 어차피 해야 하는 검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등록 조건이다. 정상 월경 기준이 25~38일인데 내 최근 여섯 번 중 거기 들어가는 건 두 번뿐이고, 주기 때문에 진행하다가 탈락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시작부터 쉽지 않은 연구네. ㅋㅋㅋㅋㅋㅋㅋ
남은 것
그날 난소가 얼마나 남았는지, 폐경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보는 피검사를 하고 나왔다.
이 결과로 다음이 정해지는데, 난소가 거의 소진됐으면 6개월 호르몬 치료로 폐경까지 건너갈 수 있고 폐경이 오면 근종은 알아서 쪼그라든다고 한다. 반대로 아직 남아 있으면 6개월 뒤에 원점이라 처음부터 다시 정해야 한다. 9월 15일에 결과를 보고 철 수치도 그때 다시 잰다.
진료비는 만 삼천 원밖에 안 나오는데 검사를 몇 개 얹으니 십몇만 원이 나왔다. 웃기지 않냐.
솔직히 자궁이 나한테 꼭 필요한가 싶다. 딱히 애를 낳을 일도 없고 매달 이 정도로 시달리면서 지킬 이유를 모르겠는데, 그럼에도 걸리는 건 입원한다 수술한다 이 얘기를 전했을 때 돌아올 반응이 미리 피곤하다는 점이다. 마흔에 자궁을 들어낸다고 하면 엄마는 슬퍼할 거고 나는 그걸 받아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 대화에 내 감정이 낄 자리는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중간에 멈출 수 있는 쪽이 낫지 않나 싶기도 하다.
호르몬 억제제를 쓰면 살이 찌고 무드스윙이 온다는 것도 아는데 그게 제일 짜증난다. 타목시펜 5년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매일 알약 하나 먹으면 끝이었고 생리를 안 하는 게 제일 좋았다. 그때 기준으로 생각하면 이번 것도 별거 아닐 것 같은데, 그때 나는 서른한 살이었다.
돌아보면 암센터는 십 년 넘게 성실하게 다녔다. 처음 5년은 반년에 한 번, 그다음은 1년에 한 번, 이후에는 2년에 한 번씩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갔는데 그동안 부인과 초음파는 5~6년 전에 딱 한 번 봤을 뿐이다. 아무도 산부인과를 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없었고 나도 생리가 규칙적이고 아프지 않으니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유방암 추적관찰은 유방을 보지 자궁을 보지는 않으니 그동안 자궁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고 있었던 셈이다. 병력이 있든 없든 나이가 되면 봐야 하는 것 같다.
9월 15일에 결과가 나오면 이어서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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