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ㅎㅈ이가 먼저 면담을 요청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면담을 앞두고도 좀 긴장했다. 사원이 먼저 면담을 신청하면 아무래도 무슨 얘기를 꺼낼지 모르니까 그렇다. 최근에 내가 ㅎㅈ이에게 지적을 많이 하기도 했고, 혹시 퇴사 얘기를 하려나, 불만을 한꺼번에 꺼내려나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면담이 시작되고 나서는 긴장보다 훨씬 먼저 피로감이 올라왔다.
가장 먼저 짜증났던 건 ㅎㅈ이의 말하는 방식이었다. 이건 정말 면담 초반부터 너무 힘들었다. 문장이 끝나지 않았다. 한 얘기를 시작하면 어디까지가 하나의 문장이고, 그래서 결론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회사 분위기가 요즘 전반적으로 삭막하다는 얘기를 시작했다가 관계 얘기로 갔다가, 업무적으로 답답하다는 얘기로 갔다가, ㅅㅇ가 퇴사한 뒤 예전처럼 화목하지 않다는 얘기로 갔다가, 생일자 챙기는 일로 갔다가, 다시 나와의 대화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얘기로 넘어갔다. 중간중간에는 자기가 많이 노력했다는 얘기도 하고, 팀원들이 좋았다는 얘기도 하고, 신앙적인 고민까지 섞였다.
한참을 듣고 있는데도 대체 뭘 원하는 건지 모르겠었다. 개선을 요구하는 것 같은데 뭘 개선해달라는 건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내가 중간에 ㅎㅈ이 말을 다시 정리했다. “지금까지 말한 걸 보면 ㅅㅇ가 나간 뒤 팀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고, 생일 챙기는 것도 힘들고, 나와의 대화가 딱딱해졌고, 뭔가 부당한 것도 있다는 얘기인 것 같은데 맞느냐”고 내가 대신 구조를 잡아줘야 했다.
이게 너무 짜증났다. 왜냐하면 이게 바로 내가 ㅎㅈ이에게 계속 지적해온 문제이기 때문이다. 말을 할 때 결론부터 이야기하고, 핵심 메시지를 명확하게 하고, 그다음에 설명을 붙이라고 계속 말해왔다. 보고서에서도 그랬고, 업무보고에서도 그랬고, 스터디 자료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정작 본인이 중요한 면담을 요청해놓고도 또 똑같았다. 자기 고충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도 내가 다시 내용을 해석하고, 문맥을 묶고, 결론을 찾아줘야 했다.
솔직히 이때부터 이미 너무 피곤했다. ㅎㅈ이가 울고 있고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그 감정에 집중하기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가 먼저 떠올랐다. 듣는 사람이 계속 추론해야 하는 화법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나중에는 나도 대놓고 “지금도 문장이 안 끊긴다”, “개선을 해달라고 하는데 무엇을 개선해달라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충을 듣는 면담에서조차 내가 또 ㅎㅈ이의 메시지를 편집하고 있었다.
그다음으로 ㅎㅈ이가 꺼낸 건 팀 분위기였다. ㅅㅇ가 있을 때는 다 같이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ㅅㅇ가 나간 뒤에는 예전 같지 않고, 팀 안이 삭막해진 것 같다고 했다. 팀원들 사이에 거리감이 생기고, 예전만큼 화목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이 말이 또 괘씸하게 들렸다.
ㅅㅇ가 나간 뒤 팀 내 대화량이 줄어든 건 나도 안다. ㅅㅇ는 원래 외향적이고 수다도 많이 떨고, 사람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지금 있는 팀원들은 대부분 조용한 편이고 나도 일부러 사람들을 끌고 다니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대화량이 줄어든 건 맞다고 했다. 다만 나는 그걸 ‘삭막해졌다’고까지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답했다.
그런데 내가 더 불편했던 건 따로 있었다. ㅅㅇ가 퇴사하기 전 나에게 여러 번 ㅎㅈ이 때문에 힘들다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ㅎㅈ이와 일하는 게 힘들고, 그것 때문에 퇴사하고 싶다는 얘기까지 했었다. 물론 ㅎㅈ이가 그 사실을 다 알 리는 없다. 그래도 나는 그 과정을 알고 있으니까, ㅎㅈ이가 “ㅅㅇ가 나간 뒤 팀 분위기가 삭막해졌다”고 말하는 게 아이러니하고 괘씸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는 “ㅅㅇ도 너 때문에 힘들어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면담에서 그걸 그대로 꺼내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의 면담 내용을 들이밀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내 감정은 그랬다. 자기는 팀 분위기의 피해자처럼 말하고 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지난 몇 년의 맥락에서는 ㅎㅈ이가 팀 내 관계 피로를 만드는 원인이었다.
그다음에는 본부 생일자 챙기는 이야기가 나왔다. 예전에는 세 명이 같이 했는데 지금은 둘이서 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은 링크에도 잘 안 쓰고, 보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아서 힘이 빠진다고 했다. 이건 솔직히 내가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부담스럽다면 줄이면 된다고 했다. 부장님과 이야기해서 생일 준비는 최소화하고 점심 정도만 챙기는 식으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이 부분은 별로 싸울 일도 아니고, 실제로 조정 가능한 문제라고 봤다.
그다음에는 나와의 관계 얘기가 나왔다. 예전보다 내가 많이 딱딱해졌고, GPT나 Claude를 돌린 것처럼 (실제로 돌린다. 사람처럼 말하면 ㅎㅈ이가 못 알아들으니까.) 너무 정제되고 차갑게 말하는 느낌이 들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나와 잘 지내고 싶은데 관계가 어려워졌다는 얘기였다. 자기 입장에서는 내가 업무적으로 발전시키려고 일부러 선을 긋고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이해하려 했지만, 점점 숨이 막힌다고 했다.
이 부분은 인정했다. 그런데 그 이유도 설명했다. 내가 웃으면서 좋게 말하면 ㅎㅈ이가 그걸 지시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하게 되고, 하지 말라고 한 걸 또 하고, “이거 전에 얘기했잖아요”라고 하면 또 “죄송합니다” 하고 넘어가는데 그다음에 또 비슷한 일이 생겼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아, 내가 좋게 말하면 이 사람은 이걸 중요하게 안 받아들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일부러 더 정확하고, 더 딱딱하고, 더 업무적으로 말하게 됐다. 그러니 업무 교정이 더 잘 됐다. 나도 그런 방식으로 말하는 게 편해서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매번 말투를 계산하고, 이 말을 어떻게 써야 또 오해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게 너무 피곤하다.
ㅎㅈ이는 그걸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이 부분에서도 나는 별로 미안하지 않았다. 최근 내가 많이 지적했고, ㅎㅈ이가 힘들었을 거라는 건 인정했다. 누가 매일 팀장한테 이름 불려가면서 지적받는 걸 좋아하겠나. 그건 나도 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왜 내가 그렇게까지 딱딱해졌는지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다음으로 본격적으로 업무보고 얘기가 나왔다. 일일보고, 주간보고, 월간보고를 자기가 유독 많이 하고 있고, 이런 부분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예전에 내가 나아지면 줄여주겠다고 했는데 계속 보고가 쌓이고 있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정말 괘씸했다.
일단 사실관계가 달랐다. 주간보고는 모두가 하는 거다. 내가 ㅎㅈ이한테 따로 시킨 건 일일보고였다. 월간보고는 처음부터 내가 “월간보고를 해”라고 강제로 시킨 게 아니다. 내가 ㅎㅈ이에게 앞으로 본인의 업무를 파악할 수 있는 보고 형태를 한번 제안해보라고 했고, 한 달 정도 시간을 줬다. 그 과정에서 ㅎㅈ이가 월간보고를 제안했다. 그랬더니 ㅎㅈ이가 자기는 내가 제안하라고 해서 제안한 것이고 사실 자기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이 말이 굉장히 괘씸했다. 자기가 제안한 것도 결국 내가 시켜서 한 것이니 본인 선택이 아니라는 식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물론 팀장이 “형태를 제안해봐”라고 하면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월간보고라는 형식을 내가 강제로 지정한 것처럼 말하는 건 또 다른 얘기다.
더 답답한 건 내가 “그래서 정확히 뭐가 부당하다는 거냐”고 물었을 때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더 보고를 많이 한다, 예전에 나아지면 줄여준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얘기였다. 그래서 내가 “본인이 나아졌다고 생각하느냐, 그 근거를 가져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ㅎㅈ이도 그 근거를 자기가 가져오기는 어렵다고 했다. 뭐 어쩌자는 거야 진짜.
그럼 내가 뭘 보고 판단해야 하나. 내가 그래서 월간보고를 보는 거다. 그냥 내 기분으로 “요즘 좀 나아진 것 같네” 하고 평가할 수는 없으니까.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결과를 냈는지, KPI나 산출물이 어떻게 변했는지 볼 수 있는 기록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ㅎㅈ이가 나아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말도 면담에서 했다. 최근에 지적은 많았지만, 결과물은 분명 전보다 좋아졌다. POP도 그랬고, 이전에 계속 지적했던 자잘한 요소들이 다음 산출물에서는 빠지기 시작했다. 오타나 띄어쓰기, 이미지 실수 같은 것도 많이 줄었다. 그래서 주간 배너처럼 반복적으로 균일한 결과물이 필요한 업무도 ㅎㅈ이에게 넘겼다. 그건 내가 ㅎㅈ이를 어느 정도 신뢰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ㅎㅈ이는 자기 입장에서 보고가 계속되니까 “왜 나는 아직도 이걸 해야 하지?”라는 억울함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반대로 “지금 좋아지고 있다는 판단도 이걸 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데?”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ㅎㅈ이가 자기는 원래 분위기가 좋고 서로 격려해주는 환경에서 자발적으로 더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능률도 더 오른다고 했다.
여기서도 나는 바로 반박하게 됐다. 내가 보기에는 실제 퍼포먼스가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는 내가 지금처럼 세세하게 지적하거나 보고를 받지 않았던 시기가 길었다. 그때는 오히려 중간 공유 없이 혼자 작업하고, 나중에 결과물을 가져오거나, 일정이 어긋나거나, 뒤늦게 보고하는 일이 반복됐다.
반대로 최근 몇 달 동안 내가 보고 방식도 잡고, 산출물 기준도 잡고, 디자인 디테일도 계속 지적하고, 말하는 방식이나 보고서 형식까지 계속 건드리기 시작한 뒤 결과물이 좋아졌다. 그러니까 ㅎㅈ이가 느끼기에는 “나는 자율적이고 좋은 분위기에서 더 잘하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내가 관찰한 실제 업무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게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다.
본인은 ‘내가 어떤 환경에서 잘하는 사람인지’를 자기 감정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 KPI나 산출물, 일정 준수, 중간 공유 같은 걸 보면 오히려 관리 강도가 높아진 뒤 성과가 나아졌다.
물론 그렇다고 압박이 무조건 좋은 관리라는 뜻은 아니다. 사람이 힘들어지면 지속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일일보고는 그만두기로 했다. 최근에는 일일보고를 받아도 내가 특별히 피드백할 게 별로 없었고, 이제는 관리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됐다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월간보고까지 없애지는 않겠다고 했다. 내가 ㅎㅈ이가 계속 좋아지고 있는지 볼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에는 번아웃 얘기가 나왔다. ㅎㅈ이는 최근 보고, 스터디, 피드백 과정이 너무 벅찼고, 그래서 번아웃이 왔다고 했다. 업무 자체가 너무 많은 것보다는 이 모든 과정이 너무 숨 막힌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번아웃은 그럴 때 쓰는 게 아니란다 바보야…
징징거림에 짜쳐서 데이터 스터디도 멈추고 싶으면 멈추라고 했다. 꼭 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스터디니까. 업무량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남는 시간에 뭘 할지를 고민하다 보니 스터디를 시킨 거라고.
여기서 내가 다른 팀원들 얘기도 했다. ㅇㅇ는 자기가 배우고 싶은 수업을 찾아서 듣고 보고하겠다고 먼저 말한다. ㅇㅇㅂ도 자기가 해보고 싶은 스터디가 있으면 계획을 가져온다. ㄱㅇㅂ은 맡은 일이 적으면 디자인 시스템에서 남은 페이지를 찾아서 정리하거나, 화면기획 쪽으로 자기 영역을 넓히고 있다.
내가 이 얘기를 한 건 그냥 “다른 사람들은 잘하는데 너는 못한다”는 비교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다.
다른 사람들은 업무가 비면 스스로 다음에 뭘 할지 찾는다. 자기가 부족한 부분을 공부할지, 다른 업무를 확장할지, 내부에서 할 일을 찾을지를 어느 정도 스스로 결정해서 온다. 그런데 ㅎㅈ이는 그걸 잘 못하니까 내가 “뭘 공부하고 싶어요?”, “그럼 이걸 한번 해봐요”, “범위는 이렇게 잡아요”까지 다 만들어주고 있는 거다.
내가 스터디를 자꾸 시키는 게 ㅎㅈ이를 괴롭히려고 업무를 추가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본인이 스스로 발전 방향을 찾아오지 않으니까 내가 대신 구조를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ㅎㅈ이가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데이터 스터디 얘기에서 또 답답한 게 나왔다. ㅎㅈ이는 내 피드백을 보고 “수요가 없어서 개선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고 이해했고, 그렇다면 굳이 이걸 해야 하나 싶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데 또 짜증이 났다.
내가 쓴 피드백의 핵심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조사 방향 자체가 틀렸다고 하지 않았다. 후반부 가설이 약하다고 했다. “왜 이 가설이 나왔는지 근거가 부족하다”, “숫자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범위를 네 가지 다 보지 말고 하나만 골라라”, “그 하나의 지표가 왜 중요한지 근거를 찾아라”라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면담 자리에서 내가 이걸 다시 말로 하나씩 풀어서 설명하니까 ㅎㅈ이가 이해하기 시작했다. 회사 안에서만 해볼 수 있는 스터디니까 계속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이 바뀌었다. 이게 또 너무 피곤했다.
결국 내 지시문과 피드백을 충분히 읽고 이해한 다음 “이건 너무 힘들다”고 한 게 아니라, 자기 식으로 일부를 받아들인 뒤 숨 막힌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았다. 글로 써줘도 맥락을 제대로 못 읽고, 결국 내가 다시 말로 처음부터 설명해야 이해한다.
나는 바로 이 부분을 계속 지적해왔다. 주어진 정보를 정확히 읽고 이해하는 것. 문장을 자기 방식으로 뛰어넘어 해석하지 않는 것. 맥락을 연결해서 상대가 원하는 행동이 뭔지 파악하는 것. 그게 안 되니까 화면기획서와 와이어프레임을 줘도 없는 내용을 임의로 넣고, Teams에 적은 메시지를 다른 뜻으로 이해하고, 데이터 스터디 피드백도 내가 하지 않은 의미로 받아들인다.
솔직히 이럴 때는 정말 “왜 이렇게까지 설명해야 알아듣지?”라는 생각이 든다. 순간적으로 멍청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사람 전체가 멍청하다고 단정하고 싶은 건 아니다. 하지만 업무에서 같은 종류의 맥락 이해 문제가 반복될 때 느끼는 내 감정은 정확히 그렇다. 답답하고, 짜증나고, 피곤하다.
ㅎㅈ이는 면담 중 울었다. 인간 대 인간으로 잘 지내고 싶고, 지금 같은 관계와 관리 방식이 계속되면 너무 힘들고,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을지 고민된다는 얘기도 했다. 아마 이건 실제 협박은 아닐 거다. 정말 힘들어서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는 걸 말한 것이겠지.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그 말을 들어도 별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괘씸했다. “내가 이렇게 힘들고, 이대로면 퇴사할 수도 있다”고 말하면 내가 불쌍하게 여기고, 혹시 나갈까 봐 겁먹고, 그다음부터 더 잘해주기를 바라는 건가 하는 반감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물론 이건 ㅎㅈ이의 실제 의도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냥 내 감정이 그렇게 반응한 거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 그만두겠다고 해도 붙잡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그래도 어떻게든 키워보려고 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만두겠다면 어쩔 수 없지”가 먼저 든다.
나는 ㅎㅈ이가 완전히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좋아진 부분이 있다. 최근 산출물도 훨씬 안정됐고, 기본기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 계속 다니겠다고 하면 같이 일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ㅎㅈ이 한 사람을 위해 지금처럼 많은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다.
오늘 면담이 끝난 뒤에도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ㅎㅈ이가 말한 “팀 분위기가 삭막해졌다”는 얘기였다. 혹시 정말 팀 전체가 그렇게 느끼고 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 건가 싶어서 ㅇㅇ에게 따로 물어봤다.
ㅇㅇ는 ㅅㅇ가 있을 때는 다 같이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ㅅㅇ가 나간 뒤에는 좀 개인적으로 각자 하는 느낌이 생긴 건 맞다고 했다. 주로 ㅎㅈ이와 작은 ㅇㅂ이가 같이 어울리고, 자기는 큰 ㅇㅂ이랑 그나마 붙어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ㅎㅈ이 얘기와 어느 정도 일치했다. ㅅㅇ가 빠진 뒤 팀이 전체적으로 조용해지고, 사람들이 조금씩 작은 단위로 나뉜 건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그럼 이런 분위기가 불편하냐”고 물었더니 ㅇㅇ는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ㅇㅇ가 불편하게 느끼는 건 ㅎㅈ이와의 관계였다. ㅎㅈ이와 같이 작업하는 동안 업무적으로도 그렇고 관계적으로도 많이 지친 것 같다고 했다. 큰 ㅇㅂ이보다 자기가 더 심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ㅎㅈ이가 말한 “팀 분위기 문제”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ㅅㅇ가 나간 뒤 팀이 조용해진 건 맞다. 하지만 그게 곧 “모두가 삭막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ㅇㅇ는 팀 전체 분위기가 불편한 게 아니라 ㅎㅈ이와의 관계가 불편하다고 했다.
그리고 사실 이건 처음 듣는 얘기도 아니다. 나는 예전 면담에서도 ㅇㅇ가 ㅎㅈ이와 갈등이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ㄱㅇㅂ도 비슷한 불편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퇴사한 ㅅㅇ는 훨씬 직접적으로 ㅎㅈ이 때문에 힘들다는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줬었다.
그래서 내가 오늘 ㅇㅇ에게 일부러 ㅎㅈ이 관련 업무 사례를 하나 언급했다. 팀방에서 디자이너가 답했어야 하는 상황인데 왜 ㅇㅇ가 대신 답했느냐는 그 사례였다.
사실 그건 의도적으로 꺼낸 얘기였다. 내가 ㅇㅇ의 고충을 알고 있다는 걸 ㅇㅇ에게 조금은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네가 힘든 걸 전혀 모르고 있는 팀장이 아니다.” 그 신호를 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내가 이렇게 가끔 티를 내지 않으면, 이 사람들은 팀장인 나에게 문제를 바로 가져오지 않고 자기들끼리 묵히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거나, 퇴사를 고민하는 단계까지 간 뒤에야 나에게 말한다. ㅅㅇ도 그랬다. ㅇㅇ도 ㅎㅈ이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 게 오래됐는데 적극적으로 가져와서 조정해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ㄱㅇㅂ도 비슷하다.
그런데 나는 팀장이다. 문제가 있는 걸 알면 적어도 “나는 알고 있다”는 신호를 줘야 하는 것 같다. 그래야 이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고 있다”, “말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여기에도 선은 있어야 한다. 내가 다른 팀원에게 “ㅎㅈ이는 문제야”, “다른 사람들도 다 너처럼 힘들어해”라고 말하면 안 된다. 그건 관리가 아니라 편 가르기와 뒷담화가 된다.
그래서 나는 구체적인 업무 사례만 가끔 짚으려고 한다. “그때 그 답변은 네가 아니라 디자이너가 했어야 했다.” 이 정도.
그 말 안에는 사실 여러 의미가 있다. 내가 상황을 봤다는 것. 네가 불필요하게 대신 처리했다는 걸 안다는 것. 그리고 원래 해야 할 사람이 하지 않은 것도 알고 있다는 것. ㅇㅇ가 그 정도만 알아도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싶다.
오늘 면담을 지나고 보니 ㅎㅈ이의 고충도 한편으로는 사실이다. ㅅㅇ가 나가면서 팀 분위기는 조용해졌다. 나도 ㅎㅈ이에게 예전보다 훨씬 딱딱하게 말한다. ㅎㅈ이는 내 관리 방식 때문에 실제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업무보고와 스터디와 반복적인 피드백도 본인에게는 상당한 압박이었을 것이다.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알고 있는 다른 현실도 있다. ㅎㅈ이가 자율적으로 일했던 시기에 반드시 퍼포먼스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최근 내가 강하게 관리하면서 오히려 결과물은 좋아졌다. 보고가 생긴 데는 이유가 있었다. 스터디도 본인이 스스로 발전 방향을 찾아오지 못하니까 내가 계속 구조를 만들어준 측면이 컸다. 내 피드백을 제대로 읽지 않고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사례도 반복됐다. 그리고 ㅎㅈ이는 본인이 팀 분위기와 관계 때문에 힘들다고 하지만, 다른 팀원들도 오랫동안 ㅎㅈ이와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ㅎㅈ이의 눈물을 보면서 미안함보다 피로와 짜증과 괘씸함을 훨씬 더 많이 느꼈다. 특히 문장이 끝나지 않는 그 화법이 너무 힘들었다. 그 긴 이야기를 듣고 또 내가 정리해야 했다. 업무에서도 내가 정리한다. 보고서도 내가 정리한다. 지시를 잘못 이해하면 내가 다시 설명한다. 스터디 방향도 내가 잡는다. 그런데 자기 고충을 말하는 자리에서도 결국 내가 그 고충의 구조를 대신 잡아줘야 했다.
아마 내가 가장 지친 건 바로 그 부분인 것 같다. ㅎㅈ이가 힘들다는 사실보다, ㅎㅈ이 한 사람을 이해시키고 움직이게 하기 위해 내가 계속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는 사실.
그래서 퇴사 얘기가 나와도 별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계속 다니겠다면 같이 일할 수 있다. 좋아진 부분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만두겠다면 붙잡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남는다고 해도 이제는 내가 계속 공부거리까지 찾아주고, 생각의 과정까지 대신 만들어주고, 모든 맥락을 말로 다시 풀어주는 방식으로 일하고 싶지 않다. 본인이 스스로 할 일을 찾고, 자기가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고, 공부할 걸 제안하고, 주어진 문서를 정확히 읽고, 한 번 설명한 맥락을 다음 일에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지금 원하는 건 그것뿐이다.
오늘 면담에서 일일 업무보고는 없애기로 했다. 말투도 조금은 부드럽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생일 챙기기도 줄일 수 있다. 데이터 스터디도 본인이 계속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다른 걸 찾아도 된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바꿨다. 이제는 ㅎㅈ이가 뭘 하는지를 볼 차례인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이제 ㅎㅈ이 한 사람 때문에 계속 내 머릿속을 점유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