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업하고 있는 성경공부 교재는, 교재인 동시에 번역서다. 어린이 교재이고 활동 내용이 들어가는 만큼 단순 번역과 교정만으로는 교재를 완성할 수 없다. 영어권에서 익숙한 게임이나 메시지를 문화적 거부감이 들지 않게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연구위원과 편집자가 하고 있다. 타 연령 교재는 이런 역할이 교정자와 편집자의 몫이다.
하지만 이들의 책임몫이 크다고 해서 번역자나 교정자의 역할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번역 오류는 뒤따르는 과정에서 찾아내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일일히 대조해서 확인하는 작업을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어린이 부서는 그 대조 작업을 내가 한다. 전부 다 하지는 못하고 교사용에서 내용 전달이 필수인 ‘본문 속으로’와 ‘이야기 성경’ 부분만 하고 있다. 활동은 컨텍스트에 맞게 대대적인 수정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리 확인해도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에는 대조 없이 번역자만 믿고 작업을 해왔다. 그러다가 신약에 들어서면서 번역 오류 발견 빈도가 높아졌다. 아무래도 신약을 다룬다는 긴장에 더 열심히 보기도 했지만, 번역가도 끝나지 않는 번역에 지친 듯 하다. 그래서 대조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번역가의 스타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번역가는 직역보다는 의역을 한다. 아이들 교재이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정확해야 하는 문장이 그리 많지는 않다. 같은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너무 딱딱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의역을 하는 편이다.
처음에는 눈에 쉽게 읽혀 참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신약에 들어서니 자연스러운 의역이었던 것이 과장처럼 느껴졌다. 특히 신학적 요점 부분과 내용 전달의 정확성에 있어서 원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이에 관해 번역자에게 최대한 직역을 해달라고 요청을 하고 약간의 불편한 기운을 느꼈다.하지만 어쩌랴, 필요한 건 얘기해야지.
난 나중에 번역 프리랜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 전공과 경험을 살리면 이 분야에서 충분히 번역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번역에 관해 고민을 하게 된다. 직역과 의역 사이 어느 수준의 번역을 제공해야지 좋은 걸까? 번역에서 의역이 심해지면, 번역자가 교정까지 본 것 같은 자연스러운 문장이 완성될 수 있지만, 그 번역본이 다시 교정자나 편집자의 거치면서 본래 의도와는 다른 문장으로 재탄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딱딱하고 word by word의 직역 또한 원본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전달하지 못할 때가 있다.
번역에 관한 많은 책을 읽어 보았는데, 어떤 책은 한국어에 맞는 직역을 제안하기도 하고, 어떤 책은 교정 수준의 번역을 좋은 번역이라고 치켜 세우기도 한다. 나도 시험 삼아 혼자 번역을 하다 보면, 마음이 조급해져 내가 이해하는 대로 의역을 할 때도 있고, 따박 따박 직역을 하고 어색해 다시 고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문장을 검토하면서 교정을 본다.
경험이 많으면 나만의 원칙을 세우고 상황에 따라 유연해질 수 있는 판단력도 생길텐데, 아직은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못한, 꿈만 꾸고 있는 직장인인지라 고민만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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