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 이동을 한 후 어쩌다보니 오디오북을 제작을 담당하게 되었다. 회사가 오디오북 제작에 박차를 가하게 된 이유는 단연코 이사님, 원장님이 이북보다는 오디오북이라는 디지털 콘텐츠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을 구축할 때 그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 유형에 있어 오디오북이 있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던 듯 하다.
내가 제작을 맡게 된 이유는 회사에서 오디오북을 사용해 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십 년도 더 전부터 오디오북을 들어왔고, 지난 편집팀에서는 더빙 제작도 담당해 왔기 때문에 오디오북 시장에 대한 이해도나 제작에 관한 이해도가 좀 더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디오북을 만드는 일을 해 보고 싶었다.
다행히도 첫 책은 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고, 두 번째 책은 대기업 자회사를 통해 제작했다. 두 도서 모두 드라마적인 요소 없는 에세이 스타일이기 때문에 썩 재미있는 책은 아니지만, 청취에 있어서는 지난 오디오북 독서 경험에 견주었을 때 손색없는 퀄리티였다. 오히려 제작을 하면서 한국의 오디오북은 room noise를 완전한 묵음 가깝게 처리해서 어색하다는 인상이 들 정도였다.
문제는 세 번째 오디오북에서 시작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 번재 오디오북 제작업체에서 시작됐다.
사전제작 준비는 디테일하고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당일 녹음 참관과 원고 체크 또한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다만 성우가 낭독 때 많이 절긴 했지만 문제 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나머지 녹음은 나의 참관 없이 진행하게 되었고, 녹음실도 참관일에 갔던 곳과 다른 곳에서 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1차본을 들었을 때 뭔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 때 화이트 노이즈가 너무 크고 소리가 이상하다고 했는데 엔지니어도 자긴 모르겠다고 하고 대표도 나에게 직접 전화해서 마스터링을 진흥원 기준에 맞춰 했다고 하며 자기가 들었을 땐 낭독이 약간 느린 것 외엔 이상한 점을 모르겠다고 했다. 결국 난 2주에 걸쳐 피드백을 작성해서 보냈다.
공백
가장 자주 느낀 점은 문단과 문단, 문장, 문구 사이의 공백이 균일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전체적으로 들었을 때
- 문단 사이 공백은 3초,
- 문장 사이 간격은 2초,
- 문구 사이 공백은 따로 만지지 않으신 듯 합니다만 1초이내,
- 날짜마다의 제묵 후 첫 문장 이후엔 약 4초,
- 묵상 질문 사이는 약 5초의 간격을 주는 걸로 파악했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했으나 절대적이지는 않으며, 흐름이 어색한 경우만 표시했습니다.
두 번째로, 중복으로 들어간 문장 구간을 표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노이즈 제거 작업으로 문장이 너무 어색하게 끊기는 경우를 표시했습니다.
볼륨
대표님이 지난 통화 때 말씀하신 것처럼 음량이 작게 들리기도합니다. 전체적인 볼륨은 키워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뚝 끊긴다는 것에 대한 추가 설명
- 음절이 나뉘는 구간을 깔끔하게 정리를 하시다가 음절의끝부분의 일부도 함께 잘려나간 느낌입니다. 말하다 뚝끊기는 느낌을 종종 경험했습니다.
- 이와 더불어 낭독시엔 목소리와 함께 화이트 노이즈 같은 것이 들리다가 음절이 끝나는 구간부턴 완전한 정적처럼 뚝 끊깁니다. 이것이 음절 일부가 잘린 것과 합쳐지거나 소리와 정적의 편차가 너무 크면 귀가 먹먹하다는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화이트 노이즈
위와 이어지는 피드백인데요, 화이트 노이즈가 유난히 더 잘 들리는 파일들이 있습니다.
123번 파일과 122번 파일을 비교하더라도 122번 파일이 낭독시 화이트 노이즈가 확연히 더 잘 들립니다.
114~122번 파일은 낭독과 공백 사이의 노이즈 차이가 너무 컸습니다.
마지막 4-5 파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에서 음량은 50%, 이어폰은 그냥 아이폰 번들 이어폰을썼는데도 들립니다. 이런 피드백은 다른 팀원에게서도 동일하게 받았습니다.
음량의 불규칙함
치찰음이나 파열음, 다른 노이즈를 줄이기 위해 작업하실 때 해당 구간의 음량도 깎여나간 것 같습니다. 확 줄었다가 다시 커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럴 때에도 귀가 먹먹한 것 같은 느낌과 청취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낭독 속도
녹음 참관 시 플로로그와 첫째날을 낭독하면서 속도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다시 들어보니 제가 제안한 속도보다도 훨씬 더 느리게 낭독하셨습니다. 참관 때 적어도 2장(1~13째 날)까지는 녹음했는데 13째 날까지는 날당 평균 7.5분, 이후는 8.5분 보다 조금 못하게 읽으신 듯 합니다.
각 날은 6쪽 분량이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편차가 날 수 없습니다. 6쪽 풀로 낭독을 해서 7.5분이라고 가정한다면, 8.5분은 6.8장을 꽉 채워서 낭독한 셈입니다. 그래서 대표님이 너무 느리지 않냐고 감독님께 말씀하신 듯 합니다.
이와 관련한 추가 녹음은 요청하지 않지만 참고차 말씀드립니다.
당황한 대표는 그제서야 다시 들어보고 토요일에 부랴부랴 전화해서 사과를 했고 엔지니어를 교체해 재편집을 하겠노라고 했다. 이 내용을 주고 받은 것이 12월 중순이고, 1월에 재녹음을 했노라고 통보 받았으며 19일에야 2차본은 수령했다.
다시 들었을 때 너무 깔끔해서 확실히 완성도가 있다고 만족하며 업체에 대한 신뢰를 다시 쌓았다. 그러나 구정 사이에 듣다보니 다른 곳에서 제작한 오디오북과는 달리 약간의 hissing noise 또는 metalic noise 같은 것이 들렸다. 그리고 오래 청취하면 청취할수록 귀에 피로도가 느껴졌다. 또한 예전처럼 “뚝 끊긴다”는 부분이 생겼다. 마지막 BGM도 fade out 구간이 너무 짧아 급하게 끝나는 느낌이었다.
결국 들을 구간 또 듣고, 다시 확인하고, 이어폰을 바꿔가면서 확인하고서야 일부 피드백을 먼저 전달했다. 그러자 대표가 칼같이 전화를 했다. 이때부터 정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대표의 또다시 내가 얘기하는 울림이나 노이즈는 모르겠다, 너무 민감하게 검수하시면 안 된다, BGM 음량이 크다는 건 주관적인 거다, 그래서 자기가 나의 피드백을 듣고 엔지니어에게 전달하는 거다 라고 말했다. 이 정도는 문제가 아니지만 정 원하면 수정해 주겠다고 선심쓰듯 말했다.
내가 예민하다고? 민감하다고? 주관적인 걸 고쳐달라고 하는 거라고? 내가 거슬린다는데 이 정도는 넘어가도 된다고? 내가 의뢰자 아닌가?
내 귀가 정확하고 하지 않고를 떠나서 소통을 이렇게 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과 얘기하려니 나도 치사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오디오북 들어 온 세월이 몇 년인데 이런 오디오 음질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음질의 차이가 앞 파일과 뒤 파일이 다른데 어떻게 모른다고 할 수 있냐? 라고 따졌다.
대표는 변명을 한다는 것이, 성우가 치찰음이 심했다, 자기들도 원래 플러그인 안 쓰려고 했는데 걸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아주 약하게 걸었다. 그럼 플러그 인 빼 줄까? 그럼 음질이 달라질 거다, 그래도 괜찮냐? 등 이상하게 협박하듯이 말했다. 치찰음이 심해서 건 플러그인 빼면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 문제가 드러나는 거 아니냐? 왜 그러시는 거냐? 라고 따졌다. 내가 신경이 쓰이는 건 1차본 때도 문제 제기 했을 때 대표님도 괜찮다고 해 놓고 이 사단이 난 거 아니냐, 난 지금 대표님 말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이 아닌 내 귀를 믿을 수 밖에 없다, 라고 따졌다.
솔직히 대작도 아닌 책에 이렇게까지 에너지 소모하며 제작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그래서 다른 팀원에게 들어보라고 했는데 의외로 내가 제기하는 문제를 모르겠단다. 자기가 오디오북을 안 들어봐서 그런 것 같다고 변명을 하긴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대체로 듣는 사람들은 비슷하게 느낄 것 같다는 생각에 시무룩해져 버렸다.
이메일로 대표에게 음질은 나의 착각인 것 같다고 사과하면서 다른 문제들만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표도 한 톤 누그러져서 전화했는데, 말하는 게 한번 신경 쓰이면 그것만 들리게 된단다. 웃겼다. 솔직히 타 업체 제작 오디오북과 비교를 해도 화이트 노이즈가 들리고 노이즈 깎이는 소리가 들리고 울림 같은 게 들리는데, 마치 내가 예민해서 그런 것처럼… 그렇다고 또 타업체 들먹이며 따지긴 싫어서 네네, 그런가 봐요, 하고 말았다.
아마 이 업체하고는 다시는 오디오북 제작은 안 할 것이다. 이제까지 타 업체와 제작하면서 수정에 관해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겪어본 적도 없었고, 수정 내용이 많지도 않았으며, BGM 관련 수정도 요청하면 상대는 자기들이 수정 가능한 옵션을 전달하며 ‘이렇게 수정하면 될까요?’ 하고 컨펌하는 정도였다. 나도 거기에 대고 무리하게 수정 요구를 하지는 않았다. 구구절절 제작 과정에 관해 설명을 빙자한 잔소리를 듣지 않았는데 이 업체는 다르다.
내가 못해도 더빙 제작 경험이 3년이고, 오디오북 소비 경험이 10년이다. 오디오북 제작만 세 번째인데 프로세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수준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내게 사전 동의도 받지 않고 재녹음을 진행한 것도 맘에 들지 않는다.
결국 오디오북 제작이 어려운 게 아니라 방어적인 소통 방식을 택하는 사람과 일하는 게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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