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해력이 아니라, 속 좁은 적개심이 더 큰 문제일 수 있어요! |
| 1. “어휘력의 핵심은 특정 단어를 이미 잘 알고 있어서 이에 대응하는 능력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단어에 대한 상상력, 혹은 문맥 속에서 (그 단어에 대한) 파악력이 더 중요한 거예요” 2. “우리가 세상의 모든 단어를 다 알지 못합니다. 저도 마찬가지고, 저도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요” 3. “(여기서) 문제는 뭔가 하면, 내가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서, 내가 모르는 특정 단어와 특정 어휘나 어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화를 내고 쓰지 말라고 요구한다는 것이죠” 4. “그러니까 타인의 언어 행위에 대해서 내가 개입을 해서 나의 위치나 상황에 맞추지 않으면 ‘당신은 틀렸다’고 요구한다는것인데.. 이게 저는 굉장히 위험하다고 보는 것이죠. 내가 모르고 상대가 알고 있는데, 이걸 쓰는 사람들에게 대한 적개심이 저는 (문해력보다는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5. “소통의 기본은, 다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데 상대방이 특정한 말을 하면 그 말을 상대방의 상황에서 상대방의 의도를 선의로 추측해주는 것이에요. 그래야 서로 소통이 가능한 거예요” 6. “상대는 나를 (선의로) 추측해주고, 나는 상대를 (선의로) 추측해주고, 그럴 때 소통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7. “한국 사회의 (진짜) 문제는 (문해력이 아니라) 소통에 대해 마음을 닫아놓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문해력 논란은) 언어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심리학적 문제라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듭니다” 8. “어휘력은 세상을 내다보는 창 같은 거예요. 쉽게 말해, 어휘가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은 (세상을 내다보는) 창의 갯수가 적고 좁은 거죠” 9. “그리고 어휘는 그 어휘만큼 그에 해당하는 현실을 만들어내기도 해요. 다시 말해, 단어라든지 어휘라는 것은 특정한 현상이나 물건을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 단어가 생기고 그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인식이 확장되기도 해요” 10. “그런 상황에서 어휘를 일상에서 1000개를 사용하는 사람과 일상에서 5000개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 세상을 보는 인식의 정도가 다를 수도 있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어요” 11. “그리고 우리의 인식이라는 건 점점 고집스러워지고, 나이가 들면 점점 꼰대가 된다고 하잖아요? 인식이라는 건 필연적으로 (그냥 두면) 좁아지게 되어 있어요. (의식하지 않으면 평소에 편하게 쓰는 단어들만 쓰게 되니까요)” 12. “그렇기 때문에 어휘력을 의도적으로라도 늘리려고 하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되면, 그야말로 점점 더 좁은 우물 속에 갇힌개구리가 되겠죠” – 이동진 평론가 |
최근 직장 후배가 ‘조우‘라는 단어를 어려워하는 것을 보고 인터넷에서 떠도는 문해력 논란이 아주 거짓은 아니구나 라고 생각했다. 글을 접하는 방식과 그 종류가 달라지고 시대가 바뀌니 사용하는 단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수능 또는 SAT 같은 대학 입시를 위한 시험에 나올 법한 단어와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요즘 세대들이 글을 읽지 않아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한탄했고, 그들의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는 기상 세대가 어디까지를 오래된 용어로 인장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이 논란의 시초가 된 이동진 문화평론가는 다르게 이 현상을 진단했다. 세대와 문해력의 차이를 다름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방어지게를 발동하는 리액션을 문제로 바라보고 이를 사회심리학적 문제로 접근했다. 그렇게 바라보고 나니 논란의 문제는 신세대의 유무식이 아닌 양 세대의 포용력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었다.
- 시대가 지남에 따라 언어가 벼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기성 세대
-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나 표현에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는 신세대
- 어려운/모르는 표현이 우월함을 드러내기 위함이거나 편을 더욱이 위한 수단이 아님을 인정하는 자세의 부재
- 더 알아가고 이해하려고 하는 의지
이동진 작가는 소통은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는 자세 (추측)에서 시작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통은 불가하다고 말한다. 이 시각 또한 무척 새로웠다.
세대간의 표현력과 사용 단어의 차이를 벗어나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부모님과의 소통의 어려움이다. 엄마는 행간에 메시지를 많이 넣는 편인데다 두 분 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어 없이 말을 하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어졌고, 나도 그런 이해의 어려움을 참지 못하고 따져 묻고야 만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하라고?” 결과적으로는 내가 부모님의 의도를 추측하려는 노력을 포기한 것이다. 부모님의 표현력 저하는 어쩔 수 없는 노화 현상의 일부이니까.
어떻게 해도 소통은 어렵다.